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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병역거부? 나는 초인종 거부!

등록 2004-05-25 00:00 수정 2020-05-02 04:23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 “오늘 밤은 내가 쏜다”는 말을 절대 안 할 사람들이 있다. “쏘는 짓은 죽어도 못한다”고 고집을 꺾지 않아온 이들이다. 하지만 5월21일 하루는 대포로 1, 2, 3차 펑펑 쏘고 싶었을지 모른다. 1심 법원이 처음으로 무죄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양심’이 아닌 ‘앙심’조차 스르르 풀릴 듯하다.
‘군사독재’시대의 마지막 조종이 울리는 걸까? 이제 우리는 ‘군사파쇼’에 ‘무덤파쇼’(파쑈 아님)라고 약올릴 수 있을까? 일부 종교인들을 중심으로 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이 말의 뜻을 가슴으로 이해할 것이다. ‘국방’의 의무를 엄청나게 ‘자주’ 강조하는 나라. 그래도 ‘자주국방’이 요원한 나라. 총을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주’색이 아닌 ‘주홍글씨’를 새겨야 하는 나라. 군대 대신 감옥을 선택해야 했던 그들에게, 우리나라는 여전히 군인들이 지배하는 독재국가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물론 이런 말을 하면 마초 중의 마초 ‘대마초’들의 반격이 즉각 돌아온다. 특히 빨간 모자에 군복 입고 교통정리하는 일을 취미로 삼는 분들은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추궁할 것이다. “너 군대는 갔다왔냐?” 앉으나서나 ‘국토방위’를 고민하는 애국자들에게 당당히 밝히리라. “그래, 나는 자랑스런 특전방위였다!”(18개월 복무특전!)


* ‘초인종주의자’들을 아시는가. 어렸을 적 친구들 중에는 그런 부류가 많았다. 인종을 초월하는 박애주의 꼬마들이 아니라, 초인종 누르고 줄행랑치는 걸 즐겼던 개구쟁이들이었다. 세월은 흘러흘러 또 다른 ‘초인종주의자’들이 있다. 그들은 정말로 인종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을 전파하려 한다. 주택가를 돌며 온갖 박대에도 무신경하게 초인종을 눌러대는 끈기는 그야말로 ‘초인적’이다. “좋은 말씀책자를 함께 나누고 싶다”며 간곡하게 대화를 요청하는 사람들. 그들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역사를 온몸으로 말해온 ‘증인’… ‘여호와의 증인’들이다.
우리집 꼬마는 태권도 ‘이단’을 꿈꾸지만, 그들은 종교적 ‘이단’을 꿈꾸지 않았다고 믿는다. “사이비 종교”라는 폄하는 주류 기독교계의 독선이라 치부하고 싶다. 그토록 고초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집총 거부의 한 길을 간 점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제발, 제발 초인종 좀 누르지 마시라. 문 열어주기 싫단 말이다. 집총 거부! 집초인종 거부!!


*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터리 언저리에는 큰 비석이 하나 폼나게 서 있다. “바르게 살자.” 사단법인 바르게살기중앙운동협의회가 전국 곳곳에 세운 것 중 하나다. 처음 이 비석을 봤을 때 키득키득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얼굴에 뭔가를 바를 수 있게 살자”는 건 아닐 테고…. 이런저런 잡념 끝에 딱 떨어지는 인물 하나가 떠올랐으니…… 고건 총리! 실제 삶도 대한민국 대표 모범생이라고 한다. 거기에 비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왠지 이런 비석이 어울릴 것 같다. “개기며 살자.” (참고로 우리집 가훈은 “개며 살자”다. 이불…) 어쨌든 그의 ‘개김성 장관임명 제청요구’를 둘러싼 최근의 정국은 고건 총리를 갈림길에 서게 했다. “나도 한번 사고치며 살아볼까?”(고건 정말 사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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