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peace@hani.co.kr
“지금은 정말로 힘든 상태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사건의 주심을 맡은 헌법재판소 주선회 재판관이 최종결정을 앞두고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9명의 재판관들 사이에 견해차가 있을 터이고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헌법재판소법의 관련 조항 미비 등으로 결정과정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법조인들이 명예와 권위를 중시해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역사적인 재판의 무게를 실감할 수 있는 말이다. 힘든 이들이 어찌 헌재 재판관들뿐일까. 두달여 동안 대통령 탄핵 과정을 지켜본 국민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정말로 힘든 상태’는 탄핵만이 아니다. 가뜩이나 체감경기가 바닥이라고 여기저기서 아우성들인데, 국제 석유가격이 치솟으면서 ‘제3의 오일쇼크’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하니 듣고만 있어도 소름이 끼친다. 심상치 않던 주가는 마침내 대폭락으로 이어졌다. 대통령 선거만 끝나면…, 이라크 전쟁만 끝나면…, 불법 정치자금 수사만 끝나면…, 4·15 총선만 끝나면…,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던 기대는 여지없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중국의 경제성장이 계속되는 상황과 맞물려 원유가가 천정부지로 오른다면 우리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은 불보듯 뻔하다. 때를 가리지 않고 공공요금까지 들썩거리니 힘드는 것은 물론이고 맥까지 빠지게 한다.
그런 와중에 우리를 끈질기게 ‘힘들게 하는’ 것도 있다.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가 그것이다. 미국과 영국군이 포로들을 학대한 사건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이라크는 물론 아랍권 전체의 저항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파병은 재검토돼야 마땅하다. 때마침 정치권에서 파병 철회 주장이 봇물을 이루고 상당한 세까지 얻어가고 있으니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제발 이번 기회에 이라크 파병 문제만이라도 매듭지어 하나의 굴레라도 벗어버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부 사람들만을 ‘정말 힘들게 하는’ 일도 있다. 17대 국회의원 당선자가 선거법 위반으로 처음 구속되고, 한 당선자에게는 검찰 구형량보다 많은 당선무효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한 시절을 풍미했던 옛말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선거사범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검찰과 법원의 의지는 사건에 연루돼 있는 나머지 50여명의 당선자들을 ‘힘들게’ 할 것이다.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했는데 검찰이 계속해서 바로 설지 지켜볼 일이다. 또 바로 서지 못하는 검찰에 대해 이번처럼 법원이 일침을 가하는지도 지켜보자. 당선자들은 괴롭겠지만 국민들은 모처럼 맛보는 신선함이다.
헌재의 탄핵 결정이 마무리된 뒤, ‘정말로 힘들게 하는’ 이런저런 일들로부터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얼마나 쉽게 벗어나느냐는 우리 모두의 몫으로 남아 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단독] “대답하라고 악쓴 윤석열…총 쏴서라도 끌어낼 수 있나? 어? 어?”
‘윤체이탈’ 윤석열…“살인 미수로 끝나면 아무 일 없었던 게 되냐”
15억 인조잔디 5분 만에 쑥대밭 만든 드리프트…돈은 준비됐겠지
계엄 ‘수거 대상’ 천주교 신부 “순교할 기회 감사”
홍장원 “내가 피의자로 조사받는 거 아니잖냐” 받아친 까닭
윤석열, 의원 아닌 “간첩 싹 잡아들이라 한 것” 누가 믿겠나
“급한 일 해결” 이진숙, 방송장악 재개?…MBC 등 재허가 앞둬
[영상] 피식, 고개 홱…윤석열, 체포명단 폭로 홍장원 노골적 무시
WSJ “트럼프, 불법이민자 관타나모 수용소 이송…군대 투입”
김용현 “애국청년 위로하려”...‘서부지법 난동’ 30여명에 영치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