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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이인제, 가스통 꽉꽉 채워라

등록 2004-05-13 00:00 수정 2020-05-03 04:23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 디지털은 정말 돼지털인가. 인간을 돼지처럼 몰고 다녔던 미군들은, 디지털 때문에 돼지고, 아니 뒈지고 싶다. 포로들을 벗기고 네발로 기게 하면서 “꿀꿀” 소리 흉내를 내게 했겠지만, 오히려 그들의 기분이 더럽게 ‘꿀꿀’해졌다. 포로수용소 헌병들의 ‘발등’을 찍은 문제의 디지털카메라 사진. 차라리 진짜 순수하게 ‘발등’만 찍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왜 거시기하게 앵글을 잡았단 말인가.
디카는 게릴라의 로켓포만큼 위험하다. 회식자리 같은 데 가면 술은 안 마시고 디카를 손에 쥔 채 ‘오버액션’장면만 채증하는 자들이 있다. 며칠 뒤 자신의 수치스러운 일거수 일투족을 JPG화일, 심지어는 동영상으로 받아보고 마음의 피를 흘리는 일군의 인간들. 또 그걸 보며 희희낙락하는 또 다른 일군의 인간들. 전자에 소속된 마이너리티라면 미군 이병 잉글랜드의 심정을 10억분의 1만큼만이라도 이해해 줄 의무가 있을까?


* 이인제 의원이 안쓰럽다. 그의 정치적 좌절과 인간적 고뇌를 생각해보라. 이회창과 노무현으로부터 받은 상처, 아니 받은 가스를 생각하면 가스통이 흐르고 넘친다. 산 높고 골 깊은 강원도 인제군 원통면에서는 예로부터 유명한 전래농담이 전해져 내려온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이‘인제’는 ‘원통’함을 참을 수 없어 ‘원통’형의 가스통을 들고 검찰의 소환요구에 저항한다는 말인가.
그래도 여기까진 신사다. 더 흥분하면 “염산을 뿌린다”고 협박하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5월5일 새벽 서해안고속도로위에서 염산을 실은 탱크로리가 전복됐다는 뉴스를 들으며, 나는 이인제 의원의 지지자들이 혹시나 막나가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었다. ‘황산벌’이 ‘염산벌’이 되는 끔찍한 상상. 그를 달래기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두번이나 대통령 경선에서 떨어진 아픔을 위로하며, 대통령 명예칭호를 안겨주는 미봉책은 어떤가. 박정희는 ‘박통’이라 불렀다. 전두환은 ‘전통’, 노태우·노무현은 ‘노통’이었다. 이인제는… 가스, 가스통이다!(빈통이라는데… 머리가 빈통?) ‘박스컵’을 잇는 국제축구대회의 전통도 살릴 수 있어 일석이조다. 아, 가스컵!


* 가정의 달에 한 가지 ‘가정’을 해본다. 어버이날을 맞아 ‘어버이들 정신차리기’운동을 벌인다면…. 왜 이 날엔 어버이의 사랑을 무턱대고 칭송만 해야 하는가. 그동안 상당수 대한민국의 엄마아빠들은 한두살 어린애도 아닌 자식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기 일쑤였다. 특히 민주주의 시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종교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탄압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일요일에 교회 나가라고 들들 볶는 엄마들이 단적인 예다. 선거 때마다 자신의 정치적 궤변을 고장난 녹음기처럼 늘어놓는 아빠들도 매한가지다.
요즘 나의 일곱살 난 아들과 네살 난 딸은 ‘싸가지송’이라는 민중동요를 인터넷에서 익혀 애창하고 있다. 그 가사의 맨 앞 소절만 들어도 십자가에 못 박히는 기분이 들지만, 신선하고 상쾌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내 취미는 못질하기… 엄마 아빠 가슴에 못을 박지… 잔소리는 질색이야… 용돈이나 팍팍 주셔~.” 21세기 어린이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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