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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데시벨, 정말 시끄럽습니까?

등록 2004-04-29 00:00 수정 2020-05-03 04:23

개정 집시법 소음기준 논란에 경찰 · 시민단체 측정 나서… 수치는 비슷하게 나왔지만 해석은 각각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기자 양반, 이리로 좀 와보소.”

경찰청 관계자가 다급하게 손짓을 했다. 눈앞에 들이민 소음측정기에는 78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이렇게 대화가 안될 정도로 시끄러운데 78데시벨(dB)이라 이겁니다. 보시오. 대화가 안 되지 않습니까.”

듣고 말하는데 지장이 없어 “대화 잘 되고 있는데요…” 하고 말을 흐렸다. “어허… 이게 안 시끄럽다고요. 어허…”

햇살은 따사롭고 봄바람은 살랑대던 지난 4월24일 오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는 이색적인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안을 두고 맞서고 있는 경찰과 집시법 연석회의가 각각 집회 소음 측정에 나선 것이다.

4명이 대화 나눠도 70dB 안팎

개정 집시법은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는 확성기 등의 사용으로 타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소음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을 위반하는 소음을 발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이 조항을 어길 경우 경찰은 확성기 사용 중지, 압수, 일시 보관 조처를 할 수 있으며, 조처를 거부하면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원 이하 벌금으로 형사처벌까지 가능하게 됐다.

경찰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을 ‘일반지역 주간 80dB 이하’로 삼았다. ‘소음진동규제법’의 기준과 각종 집회를 실측한 결과, 80dB가 적정수준이라는 주장이다.

이날 실험은 ‘80dB이면 충분하다’는 경찰의 주장과 이에 반발하는 연석회의쪽 모두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실시됐다.

‘실험대상’은 이날 오후 열린 ‘이라크 파병 반대 범국민행동’ 집회. 앰프 6대가 무대 양쪽에 설치됐고, 700여명(경찰 추산)이 참가했다. 원전직업병관리재단부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곽현석·양현수 연구원이 집시법 연석회의의 의뢰를 받아 측정에 나섰고, 경찰쪽은 경찰청 정보과 관계자들이 직접 측정기를 잡았다.

‘공정한’ 실험을 위해 양쪽 모두 집시법 시행령이 정한 소음 측정 방법을 그대로 적용했다. 시행령의 “소음 측정 장소는 피해가 예상되는 자가 위치한 건물의 외벽에서 소음원 방향으로 1~3.5m 떨어진 지점으로 하되, 소음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의 지면 위 1.2~1.5m 높이에서 측정한다”는 규정에 따라, 집회가 열린 마로니에공원 근처에 있는 문예예술진흥원, 마로니에미술관, 편의점,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앞에서 소음이 측정됐다. 측정 시간도 “소음 측정은 5분 이상 하되 대상 소음의 발생 시간이 5분 이내인 경우에는 그 발생 시간 동안 측정·기록한다”는 시행령 규정에 맞춰 5분 동안 소음을 잰 뒤 그 평균치를 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소음 측정이 진행되는 동안, ‘소음에서 해방될 권리’를 주장하는 경찰쪽과 ‘집회·시위를 통제하려는 음모’라고 맞서는 연석회의 관계자 사이에 가벼운 입씨름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실제 대화를 나눌때 소음이 어느 정도 되는지 즉석에서 소음측정기를 들이대는 등 팽팽한 신경전도 이어졌다. 4명이 보통 수준으로 나눈 대화의 소음은 70dB 안팎이었다.

집회가 끝난 뒤 공개한 경찰과 연석회의쪽의 소음 측정치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피해가 예상되는 지점’에 나온 수치는 양쪽 모두 75~78dB로 나타났다.

“소음민원 너무 많다” 굽히지 않는 경찰

경찰쪽은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그동안 자체적으로 여러 집회현장에서 소음을 측정했지만 80dB을 넘은 경우는 많지 않았다”며 “앞으로도 다른 집회현장에서 소음을 측정해 80dB이 적정한 수치라는 근거를 모아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면 연석회의쪽은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측정”이라며 경찰의 말을 일축했다. 소규모 집회나 연설·발언이 진행되는 시점에 잴 경우에는 소음이 80dB 미만일 가능성이 높은 반면, 수천여명이 모인 대규모 집회나 공연이 있을 경우에는 언제든지 80이라는 수치를 훌쩍 넘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이날 노동환경연구소쪽은 5분간의 소음 측정 말고도 ‘피해가 예상되는 지점’ 5곳에 누적소음 측정장치를 설치해 집회 전부터 집회 종료까지 약 2시간30분의 소음 추이를 측정했다. 그 결과 무대와 40여m 떨어진 마로니에미술관 외벽의 경우 집회 시작 전의 ‘배경소음’, 즉 일상적인 소음은 73dB 안팎이었으며, 집회 시작 뒤 약 1시간30분 동안 5분 이상 평균 소음치가 80dB 이상인 경우는 7차례인 것으로 나타났다. 60여m 떨어진 문예예술진흥원 앞에서는 집회 막바지에서 두 차례 걸쳐 80dB을 초과했다. “웬만한 집회에서 80dB이면 충분하다”는 경찰의 주장을 뒤집는 내용이다.

여기에다 연석회의는 “80dB은 일상적으로 접하는 소음 수치”라고 주장했다.

일반 가정에서의 평균 소음은 약 40dB, 일상 대화는 약 60dB, 집에서의 음악감상은 85dB, 록밴드의 경우 110dB, 제트엔진의 소음은 150dB 정도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이날, 교통량이 그리 많지 않은 서울 대학로 도로변에서 소음 수준을 측정한 결과 대형 차량이 지나가거나 사람들이 무리지어 갈 경우에는 쉽게 80dB이 초과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 50평 남짓한 호프집에 60여명이 웃고 떠드는 상황의 소음도 80dB이 훌쩍 넘었다.

또한 집시법 시행령은 소음 측정 장소를 ‘피해가 예상되는 지점’으로 정하고 있다. 경찰이 연단 바로 옆에 있는 매점을 ‘피해 예상 지점’이라고 주장하며 소음 측정을 한다면 언제든지 집회를 금지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곽현석 연구원은 “차량 통행이 많은 광화문에서는 집회를 하지 않더라도 배경소음이 77~78dB 수준”이라며 “80dB는 결코 ‘특별한’ 수치가 아닌데다가, 집회는 일시적이고 한시적인 소음이기 때문에 이로 인한 건강상의 피해를 가져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정영섭 연석회의 간사도 “소음 문제는 집회 주최쪽이 장소·상황에 따라 조절하고 협의할 문제”라며 “일방적인 소음 기준을 설정해두고 처벌한다면, 반정부 시위나 노동자·농민 집회 등 첨예한 이슈에 대한 집회는 80dB이 넘는다는 이유로 중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경찰은 “‘소음 때문에 못 살겠다’는 민원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결국 모든 화살은 경찰들에게 돌아온다”며 하소연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다소 모호한 표현은 앞으로 고민하면서 풀어갈 수 있다”며 규제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소음 규제는 대표적 개악조항”

경찰과 연석회의쪽 모두 오는 5월1일 메이데이 집회 등 대규모 집회의 소음 측정을 통해 각자 주장의 근거를 모아나갈 계획이다. 더 나아가 연석회의는 17대 국회 개원에 맞춰 대표적인 ‘개악 조항’으로 꼽히는 소음규제와 주요도로 행진금지, 군사시설 주변 집회금지 규정 등을 없애는 내용의 개정안을 제출하는 등, 집시법 개정운동에 나설 계획이다.

“‘지키지 못할 법’ 때문에 오히려 경찰이 불법을 강요하게 될 것”이라는 한 사회단체 관계자의 푸념이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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