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에서야 시작한 한국전쟁 유해발굴 사업… 전문인력과 제도적 장치 보강 필요
글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미 육군 인사사령부 예하에는 실하이(CILHI·미 육군 중앙유해감식소)란 조직이 있다. 이곳은 150년 전 미국 남북전쟁 때부터 지금까지 전사한 미군 유해를 찾고 신원을 확인하는 게 임무다. 이 부대의 구호인 ‘당신을 잊지 않는다’에서 알 수 있듯,미국은 세계 어디라도 달려가서 미군 유해를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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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유해, 집요하게 찾아온다
핵 문제로 맞서는 미국과 북한은 1996년부터 북한 지역에서 한국전쟁 때 숨진 미군 유해를 공동 발굴하고 있다. 북핵 문제가 불거진 2002년 10월 이후 일시 중단된 미군 유해발굴 사업은 올 들어 다시 시작됐다. 두 나라는 4월부터 11월까지 다섯 차례 미군 유해를 합동 발굴할 계획이다.
왜 미국은 이렇게 포로 구출이나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에 매달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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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주 충북대 교수(고고미술사학과)는 “전사자 유해발굴은 국가 독점 사업이다”고 설명했다. 국가는 ‘나라를 위해 희생된 자는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무한 책임 약속을 지켜야 하며, 이를 통해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민이 애국심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성보 충북대 교수(사학과)는 “현실적으로 막대한 비용과 노력이 필요한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은 정부가 국민 개개인의 생명과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하다. 이런 인식은 국민을 통치 대상이 아닌 국가의 주체로 보는 ‘국민국가’에서 가능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유해발굴 사업은 그 자체가 국가의 근대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활동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동작동에 있는 국립현충원에는 전몰 장병 10만3천여위가 유해 없이 위패로만 모셔져 있다. 군 관계자는 “10만구가 넘는 유해가 이 산하 어딘가에 묻혀 있다. 유해가 수십년 동안 눈보라와 비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현실을 알아버린 젊은이들은 ‘전사한 사람들만 손해봤다’고 생각한다. 어떤 젊은이들이 나라가 위태로울 때 과연 목숨 걸고 싸우겠다고 나설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1960·70년대에는 ‘먹고살기 바빠서’라며 이 문제를 비껴갔고, 1980·90년대에는 ‘너무 오래돼서 유해가 남아 있겠느냐’며 유해발굴 사업을 외면했다. 박명림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국가가 진정한 반공 이념에 투철했다면 반공 애국을 위해 죽어간 생명들을 이렇게 오랫동안 방치할 수는 없다. 지난 시기 우리의 반공 일변도 국가 역사 서술은 그 희생을 기린 것이 아니라 반공주의란 화석화된 이념을 기린 것이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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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체계적으로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에 나선 것은 2000년 4월이었다. 애초 한국전쟁 발발 50주년 기념사업으로 2003년까지 시한부로 시작됐다. 발굴반은 전국 58곳을 다니며 전사자 유해 935구를 찾았다. 이 중 15명은 DNA 감식 등으로 신원을 확인한 뒤 유가족들에게 인도했다.

유해발굴 결과 가운데 2002년 11월 경북 영천시 청통면과 2003년 5월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에서 있었던 국민방위군 유해발굴은 주목을 끈다. 1950년 12월부터 1951년 4월까지 전시동원과 후방지역 치안유지를 위해 국민방위군으로 소집된 민간인들이 지휘부의 부정부패로 집단으로 굶어죽거나 병들어 숨지는 국민방위군 사건이 일어났다. 군은 영천시 청통면 지역 국민방위군 유해 43구 발굴해 사인이 대부분 ‘괴질’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전사자 유해발굴을 참전군인뿐만 아니라 비참전 군인까지 확대한 것은 전사자에 한정한 한국전쟁 희생자 범위를 넓히는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은 아직도 냉전시대 관념과 부딪친다. 박선주 교수는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에서 제보자의 정확한 증언이 중요한데, 과거 이념대립의 상흔이 남아 있어서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60·70대 가운데에서는 증언을 꺼리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발굴된 전사자 유해 933구를 인류학적으로 분석했다. 먼저 발굴 유해는 어금니의 솟은 정도와 마모, 머리뼈 이음새의 붙은 정도 등을 종합해 5살 단위로 나이를 가늠할 수 있다. 이 결과 20~24살 범위가 57%였으며, 15~19살 범위에 드는 유해도 24% 정도였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주된 나이층이 20대 초반임을 알 수 있다. 15~19살층은 대부분 학도병과 의용병의 신분으로 참전했기 때문이며, 이들의 유해는 주로 낙동강 방어선을 따라 나왔다. 낙동강을 두고 밀고 밀리는 공방전에 청소년까지 대거 동원된 것을 알 수 있다. 전사자 유해의 키를 보면, 37%가 160~165cm였고, 33%가량이 165~170cm였다. 한편 150cm 이하도 20%가량 나타났는데, 이들은 학도병이나 의용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품의 사회 · 경제적 의미 조사해야
유해의 뼈대 변화를 살펴보면 그가 생전에 사회에서 일했던 분야를 추정할 수 있다. 전사자의 허벅지뼈를 비교한 결과 많은 전사자들이 농업에 종사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발굴 유해를 통해 가난하고 어린 국민들이 주로 전쟁 참화에 희생된 것을 알 수 있다.
박 교수는 “발굴 조사를 통해 많은 유품이 출토되는데, 출토 유품을 통한 개인 신원 확인과 유품의 사회·경제적 의미에 관한 심층 조사가 필요하다. 이런 분야의 조사와 연구를 위한 전문인력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국가기관 설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육군은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을 애초 시한부 사업에서 영구 추진 사업으로 승격했다. 육군은 1단계(2004~2009)에서는 남한 지역에서 유해발굴을 마치고, 2단계(2010~2015)는 비무장지대에서, 3단계(2015~2020)는 북한 지역 발굴을 계획하고 있다.
“너무 처참해서 운 적도 있다” |
유해발굴반 오요택 상병의 증언… 막연한 제보 확인하려면 이산 저산 헤매야
오요택(22) 상병은 지난해부터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전국을 돌고 있다. 그가 다녀온 곳은 경북 영천·안강·포항·의성, 충북 단양, 강원 화천·횡성, 제주도 등이다.

“제보자 중에는 ‘어릴 때 무슨 산에 나무하러 갔더니 온통 유골로 하얗더라’ 같은 말씀을 하기도 합니다. 제보가 구체적이면 좋은데 말입니다. 이런 제보도 무시할 수가 없어 최대한 확인을 합니다. 이렇게 산을 오래 타고 다녀야 하는데 힘이 듭니다.”
오 상병은 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했다. 학교 다닐 때 발굴 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어 유해발굴이 낯설지는 않다. 그는 “유해발굴반에서 일하는 게 전공 공부에 도움이 되고 역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입대 전에는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이 있는 줄도 몰랐고 처음 유해를 발굴할 때는 신기하기도 했단다. 지금은 정확한 발굴을 해서 유해 신원을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당시 숨진 사람들이 제 나이 또래였을 겁니다. 유해를 수습할 때도 예의를 갖추고 최대한 편안하게 모시려고 노력합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발굴로 지난해 5월 강원 횡성을 꼽았다. “주검 50여구가 뒤엉켜 있는 채로 있었습니다. 당시 주민들이 가매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뒤엉킨 주검을 수습하는데 머리뼈 밑에 다시 머리뼈가 나오고….” 당시 발굴을 하던 장병들은 너무나 처참한 현장에 다 같이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안 본 사람은 좀처럼 믿지 않습니다. 발굴하다보면 주검의 발가락뼈만 군화에 박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 상병과 인터뷰를 한 장소인 유해감식소에는 마침 출토된 유품인 군화가 놓여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보니 정말 진흙이 채워진 군화 속에 발가락뼈만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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