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대한민국의 어르신들이 요즘처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은 없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이른바 ‘60·70대 휴식론’ 발언 뒤, 노인들의 ‘분노’는 선거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그리고 60·70대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서울 종묘공원은 ‘그들만의 열린 광장’이 되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지난 4월5일, 종묘공원은 ‘뽕짝’ 리듬과 의 구성진 가락이 뒤섞여 흥겨웠다. 여느 때처럼 따뜻한 봄볕을 즐기려는 노인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막걸리를 들이켜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자리에서 몇 걸음만 옮기면, 매우 정치적인 장이 펼쳐진다. 노인들이 모여앉은 정자 기둥에는 ‘60세 이상 노인을 학대하는 정동영은 물러가라’는 펼침막이 나부꼈고, “내일(6일) 오후 1시까지 영등포시장 내 열린우리당 앞으로 모이시오”라고 쓰인 ‘집회공고’도 함께 붙어 있었다. 노인들이 모인 곳으로 가 “어르신들 많이 화나신 모양”이라고 한마디 건네자, 순식간에 수십명이 주위에 모여들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즈그들은 안 늙는 줄 아나. ××새끼.” “그 자식은 에미·애비도 없나보지.” “노인 공경도 모르는 게 정치는 무슨 정치야.”
누군가 다가와 “어디 기자냐”고 물었다. 기자라고 말하는 순간, 노인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는 열린우리당이랑 친하잖어.” “그런 신문은 이 나라에서 없어져야 돼.” 여기저기서 침이 튀었고 뒤통수는 따가웠다.
이날의 험악한 분위기는 종로경찰서 소속 경찰들이 “선거법 위반”이라며 펼침막을 떼려는 순간 극에 달했다. 노인 100여명이 순식간에 경찰들 앞으로 몰려와 언성을 높이며 삿대질을 시작했고, 경찰들은 달려드는 노인들을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우리가 촛불은 안 들어도, 우리 맘이 어떻다는 건 그놈들이 알아야 돼!” 결국 펼침막은 철거됐다.
열린우리당은 어르신들 달래기에 바쁘고, 야당과 보수언론은 어느새 ‘노인인권 투사’가 되었다. 선거 뒤에도 노인 문제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이어질까. 가뜩이나 사회에서 소외된 대한민국 어르신들을 ‘두번 죽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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