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발디즈에 도착하면 마을 옆 개울가로 나가보세요. 석양녘이나 새벽녘엔 곰이 우글우글해요. 연어도 어찌 많은지, 곰들이 손을 쭉 뻗어 연어를 잡아먹어요. 당신도 한번 해봐요. 사람이 곰과 나란히 서서 손으로 연어를 잡는다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고속도로 휴게소의 여주인이 부추긴 탓이었다. 지구온난화를 취재하기 위해 알래스카로 날아간 나와 류우종 선배(사진기자)는 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말에 깜박 속아 밤 끼니를 거르고 새벽잠을 설치며 그 문제의 개울가에서 보초를 섰다. 내 손으로 연어를 잡을 순 있었지만, 손을 뻗어 연어를 잡는 곰은 볼 수 없었다.
다음 목적지인 코르도바 주민들도 정말 신나게 이야기해댔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만난 택시 운전사는 “오늘 아침 곰이 공항까지 내려왔다가 저 위에 올라탔어요”라며 빨간 트럭을 가리켰다. 믿기지 않아 올해 몇 번이나 곰을 봤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다들 눈동자를 올리고 “하나둘…” 세기 시작했다.
류 선배와 나는 숙소에서 다시 ‘어떻게 곰을 찍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야, 비싼 돈 들여서 알래스카까지 왔는데, 곰 한 마리는 찍어가야지. 인터뷰할 때마다 물어보라고, 분명 포인트가 있을 거야. 아님 고기를 사다가 숲에 좀 뿌려놓을까?”
하늘이 도왔을까. 우리가 묵던 민박집 아저씨가 곰 사냥꾼이었다. 알류샨 인디언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은 마크스 킹(57). “지금까지 내 손으로 10마리를 잡았어. 곰 사냥을 하는 외지인들의 가이드를 맡은 적도 있었지. 그러면 일주일 동안 1천만원을 받아. 곰을 잡든 안 잡든 간에. 하지만 외지인들은 덩치가 작은 놈에겐 관심이 없어. 큰 곰만 쏘려고 하거든. 우리 인디언들은 생존에 필요한 것 이상 곰을 잡으려고 하지 않는데 말이야.”
이제 곰을 보는구나. 마크스는 우리를 이끌고 기세등등하게 하트니강으로 향했다. 언덕에 오르자, 그는 아름드리 전나무 위를 기어올라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잠시가 아니었다. 오른손을 이마 위에 갖다대더니 정말로 5분 이상 가만히 있었다. 역시 내공이 느껴졌다. 그는 이 숲에 적어도 15마리의 곰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등산로를 벗어나 걷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길은 길인데 뭔가 달랐다. 선명한 곰 발자국이 보였고, 끈적한 배설물이 밟혔다. 곰길이었다. 흥분해 떠드는 나에게 마크스는 목소리를 깔아 말했다.
“조용히 해. 곰이 듣는다고. 이놈들은 오후 5~10시에 이 길로 강에 나와 연어를 잡아먹어. 지금쯤인데….”
과연 강가에는 곰이 뼈만 남겨놓고 깔끔하게 발라 먹은 연어가 흩어져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마크스는 “놈들이 벌써 정찬을 끝냈나보군” 하며 겸연쩍어하더니 “다른 곳이 있어”라며 마을 동쪽의 이약 호수로 가자고 했다. 헤드라이트를 끄고 운전하던 마크스가 갑자기 차를 멈추더니, “쉿!” 하고 찻길 왼쪽을 가리켰다. 나뭇가지가 부스럭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뭔가 있어.” 마크스는 우리를 이끌고 천천히 다가갔다. 하지만 정체는 바람.
그 뒤 얼마나 새벽잠을 설쳤는지 모른다. 집착이 심해진 류 선배는 밤마다 곰 꿈을 꿨고, 나는 누런 개를 보고 “곰이다!”라고 소리쳤다. 여전히 주민들은 곰이 지난주에 찰리네 휴지통을 뒤졌고, 어제 제니퍼네 화단을 망가뜨렸다며 이야기를 그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북극해의 한 마을에서 곰 대신 북극곰을 봤다. 하도 감격에 겨워 기사도 쓰기 전에 취재 뒷담화를 썼다. 북극곰은 곧 기사가 되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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