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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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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

등록 2004-06-11 00:00 수정 2020-05-03 04:23

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peace@hani.co.kr

6월은 함성의 달이다. 1950년 6·25 한국전쟁의 포성이 50년 만인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평화와 통일의 함성으로 메아리쳤다. 민주주의를 염원했던 1987년 6·10 항쟁의 우렁찬 함성은, 세대와 계층을 하나로 엮어낸 2002년 월드컵의 함성과 뒤섞이면서 환상적인 화합의 함성을 만들어냈다. 지방선거도 4년마다 6월에 실시되는데 올해는 공교롭게도 재보선이 같은 달에 치러져 생생한 민의의 함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6월이면 우리는 설렘과 뜨거움으로 열병을 앓는다.

최근 남북 사이에 화해의 수준을 뛰어넘어 통일로 한 발짝씩 나아가는 획기적인 합의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얼마 전 끝난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서해 무력충돌 방지책이 마련됐고 155마일 군사분계선에서 체제 선전활동을 중단하기로 약속했다. 이어 열린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는 개성공단 개발을 위한 후속조처와 함께 경의·동해선 도로 및 철도 개통과 시범운행 일정 등이 합의됐다. 오는 9월까지 남북한을 오가며 장관급 회담과 각종 실무협의가 줄줄이 예정돼 있을 정도로 남북간에 군사 및 경제 분야 협상이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전투병 추가파병, 대통령 탄핵 정국, 주한미군 재배치, 경기침체 등의 소용돌이 속에 이런 남북의 통일 준비 작업들이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남북회담과 마찬가지로 이산가족 상봉도 정기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민간단체도 수시로 교류하고 있으나 관심에서 멀어진 채 일상이 되고 만 느낌이다. 얼마 전부터 각급 회담이 자주 열리는데다 합의 내용도 복잡하고, 특히 경제 분야쪽은 얼핏 해오던 것을 되풀이하는 것 같아 그 내용을 꼼꼼히 따져보지 않으면 의미를 간파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1999년과 2002년 서해에서 남북 해군간에 무력충돌이 일어났을 때를 생각하면 배부른 소리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이 결코 곱지만은 않은 시선으로 한반도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남북이 스스로 통일의 장애물들을 하나하나 제거해나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 값지게 평가되어야 할 일이다. 정부와 언론이 남북 회담의 분야별 내용과 성과, 과제와 전망 등을 국민들에게 좀더 적극적이고 조리 있게 알려 평화와 통일의 중요성을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민들도 남북 당국에 격려의 함성을 보내주었으면 한다.

반면 2년밖에 지나지 않은 월드컵의 함성이 한국 축구에 대한 불만과 걱정의 탄식으로 바뀐 것은 우리 모두를 안타깝게 한다. 홍보가 미흡했던 남북 회담과 달리, 메추 감독 영입을 섣불리 발표했다가 축구협회는 화를 자초했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속담처럼 한국 축구가 갈지자 걸음을 걷다 보니 망신살 뻗치는 일들이 자꾸 일어나는 것 같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2년 전 6월 전국 방방곳곳에 울려퍼졌던 화합의 함성을 떠올리면서 한국 축구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를 기대해본다.

남과 북은 통일로, 한국 축구는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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