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 노린재 물리치는 텃밭 농사꾼의 슬기를 보라
가뭄에 고추 말라가는데 노린재는 포동포동… 일주일에 한 번씩 차량용 청소기 사용해 ‘한판승’

고추에 달라붙은 노린재를 차량용 청소기로 말끔하게 정리했다.
농사란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계속 찾아오는 일이다. 정원계에서는 심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자란 잡초나 침입성 외래식물을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라 부르는데, 요즘은 자연 생태계의 식생과 순환을 정원에 들이는 ‘자연주의 정원’ 열풍 덕인지 그 말에 환대의 의미가 담겨 있다. 경기도 광주에서 ‘일곱계절의 정원’을 일구는 김재용 정원가도 만날 때마다 풀이라 할지 나물이라 할지 꽃이라 할지 모를 식물들을 자랑하기 바쁘다.
하지만 그것은 식물 얘기고, 초대하지 않은 날씨나 곤충이라면 곤란해진다. 올해 우리 동네에는 폭우가 없었다. 다행한 일이지만 이렇게까지 가문 여름은 처음이다. 언젠가 밭에 물을 끊는 것은 자연농을 하며 세운 목표 중 하나인데, 7월에는 해 질 녘마다 물을 줘도 다음날이면 땅이 바짝바짝 말라 있었다.
게다가 노린재는 어떤가. 지난해 토마티요 모종을 얻어다 심고 깜짝 놀랐다. 고추에 와글와글 모인 노린재가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질 만큼 식물 전체가 노린재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모종을 선물해준 농민에게는 미안했지만 지난해 심은 토마티요의 역할은 열매를 맺는 일이 아니라 고추의 노린재를 유인하는 일이었다. 올해도 노린재 밥으로 심어볼까 고민했을 정도다. 전에는 ‘뽁뽁이’라 부르며 손으로 톡톡 눌러 터뜨렸는데(제1528호 참조), 올해는 껍질이 두꺼워 손으로 누르기도 곤란하다. 내 새끼(고추)는 가뭄에 바짝바짝 말라가는데 노린재만 갈수록 통통해지니 정말이지 용서할 수 없다!
그런데 강화도 ‘나미브의 텃밭’ 민혜연 농민이 아주 신통한 묘수를 전수해주는 것이 아닌가. 이 지역 토마티요에는 노린재가 안 오냐는 질문에 농민은 “무슨 소리! 다 방법이 있지” 하며 작은 무선청소기를 들고 웃었다. 통 안에는 먼지 대신 노린재가 빽빽하게 담겨 있었다. 뽁뽁이처럼 손으로 잡는 게 가장 빠르지만 살생하는 느낌이 좋지 않고, 노린재가 풍기는 냄새가 또 다른 노린재를 부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청소기라니! 어떤 좋다는 약도 이보다 강력할 것 같지 않다.
나도 당장 차량용 청소기를 주문했다. 써보니 약간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그냥 가져다 대면 노린재가 흡입되지 않는 뒷면으로 재빠르게 숨어버리는데, 줄기를 손바닥으로 감싸고 대면 뽁뽁이를 터뜨리는 것보다 빠르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만 청소해도 노린재는 대대손손 블랙홀로 빨려든다.
사실 도시 텃밭에서 고작 노린재나 진딧물과 실랑이하는 나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 애써 지은 한 해 농사를 하룻밤 새 쑥대밭으로 만드는 고라니와 멧돼지, 땅속을 헤집어 뿌리를 말려 죽이는 두더지까지, 농민들에게 찾아오는 불청객은 차원이 다르다. 물론 초대하지 않은 존재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것도 마음으로는 이해된다. 하지만 농사는 때가 있고, 애써 키워놓은 것을 싹 먹어버리거나 짓밟아 버리면 되돌릴 방법이 없다.
이렇게 불청객과 씨름할 때면 가끔은 농사가 특별할 것 없이 매년 반복되는 무언가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어제의 불청객을 간단하게 때려눕힐 이런 기술 하나를 연마하면 다시 그 반복이 특별해진다. 내년에도 또 오라, 각설이! 그때도 청소기를 들고 맞이하겠다!
글·사진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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