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조한 농사 성적표, 주눅 든 어깨 펴준 신통방통 허브들
변변찮은 농사 성적 지청구하던 이웃들, 박하잎·오레가노 우린 차 맛보자 반색

잡초 무성한 밭에서 이웃들과 나눌 허브를 수확하고 있다.
여름이면 봄에 시작한 농사의 성적표를 받게 된다. 난 40점 정도 될까 말까 싶다. 야심 차게 시작했건만 변변찮다. “저 브로콜리 잎 좀 봐. 완전 이불이야. 그런데 내 건 왜 이래? 왜 이렇게 조그만 거야?” 똑같이 모종을 얻어 심었건만 이웃 브로콜리는 엄청 투실한데 내 밭의 건 정말 빈약하다.
감자도 캤는데 알이 작고 양도 별로다. 제일 속상한 건 옥수수다. 집으로 올 때마다 길가에 심긴 이웃 옥수수 키가 쑥쑥 자라는 걸 본다. 그런데 내 건 늘 바닥에 붙어 있다시피 했다. “넌 언제 클 거니?” 묵묵부답이다. 반면 상추는 너무 자라서 꽃이 피고 씨가 맺혀 먹는 시기를 놓쳤다.
“여기 내 감자 한번 먹어봐. 닭볶음탕에 넣어 먹으면 끝내준다.” 이웃 아저씨가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농사지은 감자를 가지고 오셨다. “나도 감자 있는데” 했더니 에이, 하고 고개를 흔든다. “내 감자랑 비교할 생각은 마” 하신다. 엄연히 감자·브로콜리·양배추 농사지은 사람에게 왜 자꾸 같은 걸 가지고 오시는지 모르겠다. 동네 할머니들도 심심하면 내 밭이 있는 도로에 앉아서 이러쿵저러쿵하신다.
“내 참깨 좀 봐. 별로 돌보지도 않았는데 잘됐지? 봄에 거름, 비료를 듬뿍 해야지. 그렇게 아무것도 안 주면 뭘 먹고 자라나. 잡초도 부지런히 뽑고 해야지. 저 잡초 다 어쩔 거야.” 내 밭을 낀 길가에 깨를 심은 할머니가 자부심이 가득한 얼굴로 자신의 참깨를 가리킨다. 그저 길가에 깨를 뿌리는가 했는데 언제 저렇게 자랐는지 참깨가 탐스럽게도 열렸다. 다른 이웃들 밭도 마찬가지다. 다들 안방처럼 깨끗하고 옥수수도 양배추도 하나같이 튼실하다.
“그런데 저 잡초는 뭐여? 못 보던 건데.” 잡초 가득한 내 밭에 수북하게 올라온 박하꽃과 오레가노, 레몬밤을 가리킨다. 나는 무엇인가 만회할 기회를 잡은 느낌이 든다. “이거 건강에도 좋고 엄청 귀한 거예요. 한번 드셔보실래요?” 후다닥 박하잎을 따고 오레가노 꽃을 꺾어 생잎 그대로 차를 우려 내놨다. 먹어도 되나 하는 표정으로 한 모금 마시더니 눈이 동그래진다. “아이고, 이거 뭔데? 입안이 화하고 목구멍이 시원해지네.” “코까지 뻥 뚫린다!” 동네 할머니들이 아주 좋아한다. “잡초처럼 생겼는데, 이런 나물도 있었네.” 다들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서 소녀처럼 재잘거린다. 박하와 레몬밤 잎을 비벼서 냄새를 맡고 머리에도 꽂고 귀 뒤에도 꽂는다.
나도 농사에 실패한 부끄러운 마음을 잊고 흐뭇해진다. 찾아보니 박하는 스트레스를 날려주고 두통을 없애고 소화에 좋다고 쓰여 있다. 태초에 누가 박하의 이런 효능을 알았을까, 신기하다. 캐머마일은 심신을 안정시키고 밤에 잠이 잘 온다거나 엉겅퀴는 간에 좋다거나 병풀이 상처 치유에 좋다거나 하는 것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진짜 궁금하다.
“이 목구멍이 화해지는 약풀 말이여. 나도 좀 줘봐.” 이웃 할머니들이 내 잡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내 밭에 들어가 이런저런 허브를 캐서 나눠준다. 이번 기회에 텃밭 농사의 품종을 바꿔볼까 하는 결심까지 하게 한다. “잡초 같지만 저게 다 약이라니까.” 적어도 내 밭에 아무리 잡초가 우거져도 동네 사람들이 뭐라 하지는 않을 것이다.
글·사진 신이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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