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농사는 불청객과의 싸움이다. 농사의 대표 불청객은 바로 풀인데, 농민들 사이에서 ‘농사는 풀과의 전쟁’이라는 유구한 관용어가 있을 정도니 말 다 했다. 풀이 기세가 강해지면 오히려 작물이 치이다 못해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그걸 ‘풀에 잡아먹힌다’고 말한다. 그러니 농사 좀 지어봤다는 어른들은 풀 한 포기도 견디지 못하고 모조리 뽑아낸다. 풀은 공동 텃밭에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인데, 도시농부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라면 풀 관리를 안 했을 때 자신의 밭까지 풀씨가 날아온다거나 번진다고 화내는 이웃을 한 번쯤 만나봤을 거다.
게다가 많은 곤충과 동물에게 서식지를 내주기도 하니 모기를 비롯해 원하지 않는 벌레를 잔뜩 끌고 오기도 한다. 이렇게 미워할 구석이 많아서인지 농사에서 풀을 몰아내는 데 쓰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하다. 땅을 갈고, 비닐을 씌우고, 제초제를 뿌리고. 풀에 대해서만큼은 ‘전쟁’이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닐 거다.
우리 밭은 2022년 4월 마지막으로 경운했는데, 빈 땅에서 올라오는 새 풀은 땅에 단단히 뿌리 내려 끈질기게 자란다고 할까. 하지만 트랙터가 닿지 않아 오랫동안 풀 관리가 되지 않은 언덕 가장 윗부분은 질긴 풀이 없다. 지난 2년 동안 그 위에 풀을 베어 두툼하게 덮어주니 지금은 풀이 나더라도 베거나 뽑아내기 좋게 연하게 난다.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관리가 잘되는 아이러니라니. 땅 위에 두껍게 풀이 쌓인 유기질 층이 생기면 땅에 바로 뿌리를 내리는 것보다 풀이 연약하게 자란다는 농민들의 이야기가 내 밭에서도 조금은 실현 중인가보다.
풀과는 때로는 밉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면서 조금씩 농사 동료가 되고 있는데, 내 농사는 올여름부터 노린재와의 전쟁이 돼버렸다. 3년 전까지는 밭에서 노린재를 만나면 ‘농사지으니 노린재도 보는구나’ 싶었는데 2023년 여름 노린재가 고추에 잔뜩 달라붙어 열매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노린재가 꽃이나 열매라면 이 농사는 대박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말 우글우글!
노린재의 공포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지만 노린재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했다. 그냥 두면 고추에 열매가 달리지 않을 정도로 괴롭혔고 달린 고추도 세력이 좋지 않아 크게 크지 못하고 열매에 구멍을 뚫어두기도 한다. 이게 어떻게 키운 고추인데! 2023년에는 빈 페트병에 물을 담아 노린재를 퐁당퐁당 빠뜨려가며 잡았는데 지나가던 한 농민이 말한다. “그냥 뽁뽁이(에어캡)라고 생각하면서 터뜨려. 우물쭈물하는 동안 다 날아가버려.” 그렇다. 날 수 있는 노린재는 사람이 전쟁을 선포하면 약 올리듯 날아가 사라지기도 하고 땅 밑으로 우수수 떨어져 금방 자취를 감춰버린다. 그냥 눈 딱 감고 톡톡 누르는 수밖에. 한 달 동안 열심히 뽁뽁이를 터뜨리다보니 일단은 내가 이긴 것 같다. 노린재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올여름 다진 고추를 멸치 육수에 졸여 만드는 ‘고추장물’과 내년까지 먹을 고추청은 사수해야 하니까.
글·사진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농사꾼들: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지역이 다른 네 명의 필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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