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헤라’ 양산하는 이성애 남성 문화는 왜 이름이 없을까

필자 도우리 작가가 오픈에이아이(AI)의 챗지피티(ChatGPT) 이미지 생성 모델에 ‘양산형 멘헤라’ 이미지를 요청해 생성된 이미지.
“멘헤라 함부로 만나면 안 된다.”
‘멘헤라’에 대한 칼럼을 쓰기 위해 서울 연남동 한 카페에 갔는데, 내 뒤편 테이블의 젊은 남자 무리에서 들려온 대화다. 얼마 전 배우 황정민의 불륜과 노동 갈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 여성에 대해서도 온라인에서 “멘헤라한테 잘못 걸렸다”는 반응이 있었다.
멘헤라(メンヘラ)는 한 일본 커뮤니티 사이트의 ‘정신건강’(Mental Health) 게시판 이용자를 부르던 말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우울증이나 조울증 등 심한 정신병 증세가 있는 사람 혹은 그런 자신을 자조하는 뜻으로까지 확장돼 쓰이는데, 최근에는 ‘예쁘고 귀엽지만 막상 만나고 보니 남성에게 ‘병적으로’ 애정을 갈구하거나 집착해서 곤란하게 만드는 여성’을 지칭한다. ‘남미새’(남자에 미친 새×)와 함께 지금 시대의 특정 여성을 묘사하는 밈이 된 것이다.
멘헤라는 매력적이되 치명적인 여성이라는 점에서 팜파탈이나 ‘꽃뱀’과도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팜파탈이 주로 사회적 지위가 있는 남성을 파멸시키는 결과를 낳고, 꽃뱀이 경제적 이익을 갈취하는 것이라면, 멘헤라가 요구하는 것은 애정이라는 점에서 구분된다. 멘헤라처럼 관심을 갈구하는 여성을 가리키는 계보에는 영화에서 기인한 ‘미저리’라는 단어가 있다. 다만 멘헤라는 자신의 정신병이나 취약함을 숨기지 않고 심지어 노골적으로 패션으로까지 정체화한다는 점에서 미저리와도 약간 다르다. 양 갈래 머리, 마이 멜로디나 쿠로미 캐릭터 액세서리, ‘청담동 며느리 룩’으로 오인되기도 하는 프릴과 리본이 달린 블라우스와 셔링이 한껏 잡힌 치마 차림, 통굽 구두 같은 ‘양산형’ 패션 같은 게 ‘멘헤라 패션’으로 꼽힌다. 이 차림으로 틱톡 챌린지나 셀카를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우울, #정병, #자해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또 다른 멘헤라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하기도 한다.
멘헤라는 ‘남미새’나 ‘정병러’(정병+er, 정신병이 있는 사람)와 달리 ‘지뢰’로 묘사되는데, 애정결핍이나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한 의존성을 띠는 동시에 공격성도 지닌다. 이 여성들은 남성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체념하거나 침묵하지 않고, 때로 자해적 행동까지 불사한다. 이런 정체성을 악용해 ‘정신적으로 불안한 이쁜 여자 찾으려면 어디 가야 해?’ 같은 유명한 블라인드 커뮤니티 게시글처럼, 멘헤라를 착취하려는 남성까지 존재한다. 멘헤라 문화를 향유하는 여성들이 모인다는 서울 홍대입구역 주변 경의선 책거리가 일부 조건만남에 내몰린 ‘일탈한’ 여성 청소년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낙인화되기도 했다.
황정민 스캔들의 ‘실체적 진실’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언론사’ 디스패치가 해당 여성이 고양이를 학대한 것처럼 암시하거나 과거 아이돌의 유명한 팬이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남성에게 주제넘게 매달리는 ‘미친×’이나 ‘빠순이’로 프레이밍한 게 일부 성공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 여성의 모든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유부남의 불륜은 “경솔함”으로 퉁치고 여성은 ‘미친×’으로 만드는 클리셰는 강력하다.
그리스·로마 신화 속 카산드라처럼 멘헤라가 하는 말은 아무도 믿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 멘헤라에게는 고분고분함이나 정숙함 등 사회 기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미칠 자유’가 생긴다. 그런데, 이 수많은 미친x과 멘헤라를 양산하는 이성애 남성 문화를 가리키는 용어도 함께 발명되어야 하지 않을까?
도우리 작가·‘불편한 유행’ 저자
*모두가 단일하게 매력적이기를 기대받고 또 기대하는 시대, 매력의 재발명을 고민하는 칼럼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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