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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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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곳에 다 붙는 텃밭 노린재의 얄미운 먹성

인천 계양 편—안쓰러운 아티초크, 자연 거슬러 키우려는 마음은 집착일까
등록 2025-09-04 22:14 수정 2025-09-06 07:18
온몸이 고사한 채 힘겹게 꽃을 유지하는 아티초크.

온몸이 고사한 채 힘겹게 꽃을 유지하는 아티초크.


이것이 기후위기의 몇 안 되는 순기능일까? 인천의 초여름 날씨는 꽤 쾌적하게 느껴질 정도로 서늘하고 건조하게 시작됐다. 하지만 인간의 착각이었음을 알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선선하게 느껴지던 5월 초부터 노린재가 지난해보다 더 일찍 등장한데다 처음 보는 종류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11월 말부터 폭설과 강추위가 계속됐음에도 작물에 노린재 알부터 약충, 성충이 모두 나와서 전 세대를 한꺼번에 관찰할 수 있는 진풍경이라니. 사실 그런 상황은 지난해에도 있었지만 올해는 더 일찌감치 앞당겨졌다.

노린재 종류가 많다는 것을 문자로는 알고 있었는데 정말이었다! 책이나 온라인 검색으로만 봐왔던 초록빛이 나거나 빨간 줄무늬가 있는 노린재는 올해 텃밭을 하면서 처음 봤다. 그리고 신기한 점은 노린재가 정말 온갖 곳에 다 붙는다는 거다! 올해는 모종 기르기에 완전 참패해 고추를 몇 포기 기르지 않아 고추에는 크게 달라붙지 않았지만, 완두부터 시작해 애호박, 오이, 가지, 오크라, 심지어 아티초크까지! 편식 없이 골고루 야무지게 잘 먹는 노린재의 먹성은 정말 얄미울 정도다.

그래서일까, 텃밭 이웃들도 부지런히 농약을 뿌린다. 농약을 치는 모습은 매년 자주 목격했지만 올해는 더 자주, 더 많이 뿌린다. 제초제만큼은 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공용공간의 풀을 부지런히 베어왔지만, 가물어도 풀은 잘 자라고 8월 들어 비가 자주 내리면서 금세 다시 우거졌다. 한발 놓친 사이, 공용공간 여기저기에 누렇게 말라 죽은 풀과 농약병, 비료 포대, 배달 음식 쓰레기까지 나뒹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쓰다.

텃밭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흔히들 ‘친환경 생활’을 실천한다며 칭찬한다. 하지만 눈앞의 광경을 보고 있자면 정말 이 활동이 친환경인가 되묻게 된다. 물론 모두가 생태적인 삶을 추구해서 텃밭을 일구는 것은 아님은 잘 알지만, 누군가 고추농사를 정리하며 비닐을 벗기는 모습만 봐도 그 쓰레기는 어디로 갈까 하는 걱정에 가슴이 조마조마해진다.

그 순간 노린재의 습격을 받은 탓인지, 비를 많이 맞은 탓인지 온몸이 구멍 뚫리고 녹아내려 앙상해진 아티초크가 눈에 들어온다. 아티초크를 향한 각별한 애정은 2년 전(제1469호 참조)에도 고백한 적 있는데, 그 뒤로도 매년 몇 송이를 수확해 먹을 정도로 기르고 있다. 하지만 다년생인 아티초크는 매년 씨앗도 맺지 못한 채 대부분 죽어 나가고, 살아남은 개체도 월동하지 못해 결국 자손도 남기지 못하고 긴 생을 이어나가지도 못한다.

이성은 아티초크를 진작 포기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매년 지금보다 조금씩 잘 길러내고 있으니 ‘조금만 더 도전해볼까?’ 하는 마음이 여기까지 오게 했다. 그 덕분에 올해 아티초크는 지난해보다 더 오래 버티며 더 크고 예쁜 꽃을 피워냈지만 온 힘을 다해 피운 꽃 하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나 안쓰럽고 미안하다. 모든 자연조건을 거스른 채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려는 인간의 이런 도전은 사실 집착이 아닐까.

글·사진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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