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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벼의 산실, 우보농장을 아시나요

즐거웠던 토종벼 갈무리, 그건 노동 아닌 ‘놀이’였어
등록 2026-01-15 20:35 수정 2026-01-18 16:52

―인천 계양 편

손으로 벤 볏단이 잔뜩 쌓여 있는 우보농장 작업장의 풍경.

손으로 벤 볏단이 잔뜩 쌓여 있는 우보농장 작업장의 풍경.


우리나라 ‘토종벼’의 대표 농장은 단연 ‘우보농장’이다. 2011년 시작해 무려 450여 품종을 복원해냈으니 이 말에 반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주변에 토종벼 농사를 짓는 농민이 대부분 우보농장에서 씨앗을 받아왔다고 할 정도로 한국 농업과 식문화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갖는다. 나 역시 그 덕에 수많은 품종의 쌀로 지은 밥을 맛보며 살아왔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먹는 사람으로서도,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도, 우보농장은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버팀목이다.

우보농장에 다양한 공동체 농업과 식문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자주 참여하지 못했다. 하지만 토종벼를 갈무리할 시기에 일손이 부족하다는 ‘에스오에스’(SOS)를 접했다. 평소 마음속에 있던 은혜를 갚고자 동료와 함께 경기도 여주에 있는 우보농장으로 향했다.

아침 일찍 도착하니 홉을 키우며 맥주를 만드는 양조사이면서 우보농장의 이사인 장동희 농민이 직접 만든 농주를 권한다. 러시아 스타일의 맥주인데 도수가 낮고 산미가 높아 청량한 맛이었다. 영하권의 날씨였지만 우보농장의 ‘108미’(탈곡하며 다양하게 섞인 쌀)를 발효했다는 맥주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뽀얀 입김이 나오도록 추운 날 처음 보는 작업 동료들과 마시는 차가운 ‘웰컴 비어’는 의외로 괜찮은 조합이었다.

본격적으로 주어진 임무는 수확한 벼를 정리해 전시용과 탈곡용으로 분리해 묶어두는 것. 손으로 작업해 토종벼 길이가 제각각이고 볏단마다 다른 품종이 섞여 쉽지 않았다. 이렇게 볏짚에 섞인 다른 품종의 나락을 꼼꼼하게 선별해 분리하고, 전시용은 정해진 길이와 틀에 맞춰 보기 좋게 묶는다. 그리고 나머지 벼를 도정하기 쉽도록 한데 묶어 옮긴다.

게다가 토종벼는 보통의 벼보다도 키가 크다! 단신인 나는 볏단을 안아 들었을 때 나락이 내 머리 위로 솟구쳐 올라와 앞을 보기도 어려웠다. 품에 가득 안으면 정말 무거워 나락에 머리를 맞아가며 옮겼고, 볏짚 몇 가닥으로 큰 더미를 묶는 작업도 꽤 어려웠다. 손목, 허리, 어깨…. 평소에 잘 쓰지 않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다.

눈치를 살피며 계속 키가 작은 품종을 고르려고 꾀를 부리는 찰나, 유독 큰 볏짚만 걸려 힘들겠다는 위로를 받던 앞에 계신 수녀님 말씀. “힘든 일이라도 누군가는 해야겠지요.” 수녀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용문성당에서 토종 농사를 짓는데, 수도권에서 토종 씨앗으로 농사짓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명성을 지닌 분이다. 나는 지난해에 건너 건너 용문성당 수녀님들이 이어온 ‘세봉상추’ 모종을 얻어 정말 맛있게 먹었던 터라 그 씨앗을 나눠주신 분과 함께 작업하는 것으로도 영광이었다. 게다가 이런 명언과 온화한 아우라를 풍겨내시니 나도 마음을 가다듬고 볏짚을 꽉 묶는다.

고된 노동 끝에 먹은 점심은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대단한 산해진미는 없지만 우보농장 108미로 지은 밥에 각자 싸온 반찬을 나눠 먹으니 너무나 맛있었다. 여기에 농업 노동의 ‘국룰’이나 다름없는 믹스커피 한 잔까지 곁들이니 완벽한 한 끼였다.

이날 가장 많이 한 말은 “오길 참 잘했다”이다. 문득 “혼자 하면 노동이지만 함께 하면 놀이가 된다”는 도시농업 활동가 이복자 대표의 말이 생각났다. 그 놀이에 동참하고 나니 함께 놀아보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올해는 조금 더 잘 노는 농사를 지어볼까.

글·사진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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