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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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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 ‘퍼머컬처 정원’에서 다 함께

―전남 강진 편
버려진 공유지를 텃밭이자 꽃밭으로 되살리며 경험한 지속가능성
등록 2025-11-20 22:19 수정 2025-11-23 12:51
아이들이 까마중 열매를 따 먹으며 텃밭에서 자라난 다양한 식물을 관찰하고 있다.

아이들이 까마중 열매를 따 먹으며 텃밭에서 자라난 다양한 식물을 관찰하고 있다.


아이디어가 모여 정원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다보면 문득 ‘미술관이 바깥으로 흘러나오고 있어!’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곤 한다. 계절이 지나며 시시각각 변하는 정원에 사람들이 모여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진짜 멋진 일이겠구나 싶다.

하지만 처음부터 상업적으로 기획하지 않는 한, 정원이나 텃밭은 대개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기도 하고 다양한 작물을 심다보면 통제해야 할 것도 많아, 누구나 편하게 드나들며 즐길 수 있는 공공 공간으로 만들기는 쉽지 않다.

올봄 4월 중순쯤, 전남 강진군 병영면에서 주민공모사업으로 퍼머컬처 활동가 소란 선생이 하는 2부작 강연이 열려 수업에 참여했다. 병영면에 오랫동안 방치된 공유지를 개간해 퍼머컬처 정원을 실습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해가 뜨고 지는 방향을 고려해 정원을 디자인하고, 참여자들은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땅을 다듬고 이런저런 식물을 심었다. 실습은 2부로 끝났지만, ‘모두의 정원’ 단체대화방을 통해 정원이 점점 가꿔지는 모습을 계속 지켜볼 수 있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지나 가을이 한창이던 지난 10월 어느 주말, 아이들과 함께 모두의 정원을 다시 찾았다. 부모와 아이, 활동가 30여 명이 모여 가을이 지나가는 텃밭에서 함께 ‘팜파티’를 즐기는 이색적인 시간이었다.

팜파티에서는 정원의 식물을 자세히 관찰하고, 야생화로 압화 프린팅을 해보거나, 식물에 관한 그림책을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수확한 허브를 활용한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밭에서 난 들깨를 타작해보고 팥도 수확했다.

생태 개념을 통해 알차게 준비된 프로그램이 생각보다 즐거웠는데 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치 정원이라는 미술관에 놀러 온 사람들처럼 참여한 모두가 자유롭게 뛰어놀고 왁자지껄 떠들며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이들 입에서 “빨리 집에 가자”는 말 한마디 나오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대성공 파티였다.

모두의 정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야말로 ‘모두’가 함께한다는 점에서 뜻깊게 다가온다. 진행자와 참여자라는 큰 경계 없이 정원을 오고 가자는 취지다. 그곳을 아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 정원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로부터의 관심과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 모두가 함께 다양한 식물을 심어보고, 씨앗을 나누고, 만남과 즐길거리를 계획한다. 장마가 지기 전에 텃밭의 풀을 뽑거나 물을 주고 푯말을 세우고 수확하며 함께 가꿔가는 지속가능성을 고민한다.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기가 가능한 곳!

집과 집 사이 오랫동안 방치된 돌밭 공유지에 사람들이 모이고 아름다운 정원이 되다니. 올해는 모두의 정원을 경험하며 정원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것이 가능함을 배웠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가보지는 못했지만 내년엔 모두의 정원에서 더 많이 활기찬 ‘정원의 에너지’를 느끼고 싶다.

글·사진 이지은 패브릭·그래픽 스튜디오 달리오로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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