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가 다시 의류로 재활용(섬유 순환·fiber-to-fiber)되는 비율은 전세계적으로 약 1%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의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전세계 온실가스 발생량의 약 10%에 달하고, 발생하는 산업 폐수량도 전체 산업 폐수의 약 20%에 이른다. 이에 유럽연합(EU)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옷을 팔아 이득을 본 ‘제품 생산자’에게 제품에 대한 ‘재활용 의무’를 부여하는 제도(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도입하는 추세다. 옷을 설계하는 단계부터 재활용이 가능한 섬유를 만들고, 생산자에게 수거된 중고 섬유 선별 비용을 부과하는 등 재활용 시스템을 만드는 데 일조하게 하는 게 핵심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국내에도 생산자에게 일정량의 재활용 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재활용에 소요되는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가 있지만, 적용 대상에서 ‘의류’는 빠져 있다. 환경부는 연구 용역을 맡겨 “섬유 및 의류제품을 최종 판매하고 있는 섬유 패션 브랜드 및 판매자가 폐기물 부담금 납부 대상자로 지정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장용철 충남대 환경공학과 교수 연구팀, ‘품목별 재활용 제도 개선 방안’, 2023년 8월)을 보고받았지만, 대응에는 소극적이다. 환경부는 한겨레21의 질의에 “(의류의) EPR 제도 도입은 중장기적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라며 “현재 섬유패션 브랜드 및 판매자 쪽에 취하려는 별도의 조치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정부가 2022년 충남대 연구팀에 용역을 맡긴 이유는 최근 유럽연합(EU) 국가들의 규제 흐름과 무관치 않다. 2007년 의류 EPR 제도를 시작한 프랑스는 중고 섬유 수거율을 2028년 60%까지 높이고, 합성섬유를 90% 이상 함유한 중고 섬유의 경우 재활용률을 2028년까지 90%로 높이겠단 계획이다. 이때 목표치 달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생산업체다. 생산업체는 프랑스 환경 규정에 따라 생산자책임기구에 제품을 등록해야 하고, 생산자책임기구는 폐기물 처리 등에 관한 비용을 산정하고 징수 대상 기업의 재활용 의무를 대리 수행하게 한다.
2023년 7월부터 의류에 EPR을 적용한 네덜란드는 프랑스보다 되레 속도가 빠르다. 2025년까지 섬유제품의 50%를 재사용 또는 재활용, 2030년까지는 섬유제품의 75%를 재사용 또는 재활용, 2050년까지는 모든 직물을 재활용해 지속가능하게 생산하는 게 목표다. 또한 프랑스처럼 섬유 수거 및 재활용에 드는 비용을 기업이 분담하게 했다. 수출주도형 경제구조인 한국의 의류·섬유·화학업계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충남대 장용철 환경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우선 “재고 제품의 직접적인 소각 및 매립” 금지부터 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또 기업들이 생산단계부터 제품 관리 체계를 마련해 제품의 친환경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이 제품의 내구성, 소재 단순화, 미세플라스틱 방지 소재 사용, 친환경적 공정 관리 등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출고량이나 탄소배출량 등 환경적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재활용 기술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환경부는 연구 용역 결과를 받은 지 1년4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EPR 도입에 소극적이다. 환경부는 왜 EPR을 도입하지 않는지에 대한 한겨레21의 질의에 “ 폐의류의 EPR 도입을 목적으로 두고 용역을 시행한 것이 아니라 국내외 현 상황을 파악함과 동시에 중장기적 로드맵 구상 차원으로 해당 용역을 수행했다”고 답했다. 또 “선 결 과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 및 재활용 기반 구축이 어느 정도 마련된 뒤 EPR 도입 검토가 가능하다 . 폐의류의 경우 시장성이 확보되거나 상용화된 재활용 기술이 없고 , 재활용 시장 또한 대부분 중고의류 수출에 머물러 있으며, 공제조합 또한 설립돼 있지 않아 EPR 제도의 도입은 중장기적 검토가 필요한 사항 ”이라고 설명했다 .
한국 환경부의 이런 대응은 국외 분위기와 대조적이다. 유럽연합 국가들은 상용화된 폐의류 재활용 기술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강한 규제에 나섰고, 국내 및 국외 기업들은 스스로 살길을 찾기 위해 관련 기술자들에게 연락,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기술을 구매하는 등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예를 들면 한국화학연구원 조정모 박사는 2023년 폐의류 염료의 화학적 성질을 이용해 재활용 원료를 분리할 수 있는 선별기술, 선별된 폐합성섬유를 합성 이전의 단량체 원료로 되돌리는 재활용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는데, 이후 프랑스·미국 등 선진국의 유명 패션 기업이나 화학 회사들로부터 기술 상용화와 관련한 문의를 수차례 받았다. 유럽 내 기업과 거래하는 국내 의류·섬유·화학업체들도 그에게 기술 상용화를 문의해오고 있고, 몇몇 대기업은 조정모 박사가 기술 이전한 중소기업 ‘리뉴시스템’과 계약을 논의하고 있는 단계다. 유럽 국가들은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규제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규제를 만들어 기업들이 선도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시스템을 만들게 하겠다’는 자세다.
대체로 영세한 규모인 의류수거 및 재활용 업체 관계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한국의류섬유재활용협회 정석기 사무국장은 “저개발 국가들의 중고의류 수용량이 한계를 넘어선 상황이라 갑자기 국내 의류수거 재활용 업체들이 국외로 의류를 수출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올 수 있어 정부가 빨리 대비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업체들이 인건비 지급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인도네시아는 이미 정부 차원에서 중고의류 수입을 막고 있어서, 말레이시아로 옷이 수입된 뒤 인도네시아로 뿌리는 형태가 됐다. 패스트패션 때문에 의류 폐기물은 계속 발생하고 줄어들지 않을 텐데 앞으로 다른 나라에서도 그 많은 수출이 막히면 우리나라 안에서 어떻게 폐의류를 소화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현재 헌 옷이 ‘의류수거함에서 영세 재활용 업체로, 재활용 업체가 수출한 뒤 저개발국가로, 저개발국에서도 팔리지 못하면 매립지로’ 가는 상황과 관련해 “인력·자본·기술력 모두 부족한 영세한 업체들이라 민간 차원에서 이 시스템을 바꿀 구조를 만들긴 어렵다”고 호소했다. 정부가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도입해야, 의류 및 섬유 대기업이 남긴 이윤이 재활용 업계에 지원금 형태로 들어올 수 있고, 관련 기술이나 시스템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용철 교수 연구팀 보고서 역시 “EU 회원국은 공통적으로 2025년까지 자국 내 별도 규정에 따라 의류, 섬유 폐기물 수거 시스템을 구축할 의무가 있다”며, 우리나라도 안정적 국내 재활용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선 “국내 재활용 업체는 매우 영세한 수준으로, 경제적 지원과 기반 마련이 필수적”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폐섬유 및 폐의류 발생량 규모는 막대하다. 장용철 교수 연구팀 보고서(2021년 기준)를 보면 1년간 생활계에서만 47만여t의 폐섬유가 나왔다. 전국 약 10만 개에 이르는 의류수거함과, 패스트패션 브랜드 매장에 설치된 의류재활용함은 ‘의류가 잘 재활용되고 있다’는 착시를 불러일으키지만 현실은 달랐다. 생활계 폐섬유의 66%가 소각됐고, 22%가 매립됐으며, 재사용·재활용은 11%에 그쳤다.
그러나 입법부 움직임은 더디다. 제21대 국회에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의류재고폐기금지법을 발의한 적은 있다. 기업이 브랜드 이미지를 관리하려고 새 상품인 재고 의류를 소각 폐기하는 걸 금지하는 법안이었다. 명칭은 재고 의류를 순환자원에 포함하도록 하는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 일부개정안’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한 채 제21대 국회 임기가 끝났다.
제22대 국회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김태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련 법안 3개를 발의했으나(재고 의류를 사업장 재고폐기물로 정의하고 발생량을 의무적으로 신고하게 하는 ‘폐기물관리법 개정안’, 신고된 물량은 폐기를 금지하는 ‘순환경제사회 전환촉진법 일부개정안’, 생산자에게 재활용 의무를 지우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품목에 의류를 포함하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아직 한 번도 논의되지 않았다. 김태선 의원실은 “법안을 상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환노위에서 논의된 적은 아직 없지만 계속 회의가 열리고 있어 이르면 연말, 아니면 2025년에 논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태선 의원실은 우선 의류 환경과 관련한 각계가 논의할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환경부·다시입다연구소·전문가 등과 입법 관련 토론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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