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깍지도 먹을 수 있는 완두인 ‘스노피’를 기름에 볶아 꽃으로 장식해 접시에 담았다.
매달 친구들의 밭에서 꾸러미를 받는데 오랜만에 빛깔이 화사해졌다. 100% 노지에서만 농사짓는 그들의 밭에서는 한동안 색을 빼며 말려낸 묵나물과 곡물이 왔는데, 이번에는 반짝이는 빨간 보리수와 촉촉한 세 종류의 완두가 담겨 있다. 날씨는 한참 전부터 여름이었지만 식탁에는 이제 막 여름이 찾아왔다. 이제부터는 새콤하고 싱그럽고 풋풋한 열매가 쏟아져 나올 테니 본격적으로 텃밭도 예뻐지고 사람도 달콤한 작물을 입에 넣을 수 있다.
친구는 매년 꾸러미를 보내기 전마다 완두 많은 집에 완두를 더 얹어주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며 정말 완두를 보내도 좋은지 묻는다. 이미 텃밭에 두 종류 완두가 자라고 있지만 진짜로 좋아하는 작물은 늘 내 것만으로는 아쉬운 법. 좁은 밭에서 먹기도 하고 채종도 해야 하기에 완두는 늘 부족하게 느껴져, 텃밭에 설익은 완두가 막 달리기 시작할 때는 제주도에서 자란 완두를 주문해 먹기도 한다.
갓 수확한 완두는 화려한 요리 기술도 필요 없다. 소금간을 한 물에 퐁당 빠뜨려 푹 삶아내기만 해도 충분한 맛이니까. 갓 수확한 완두를 삶아내면 딱 밤 정도의 담백한 단맛이 나는데 밤처럼 목이 막히는 게 아니라 수분이 가득하다. 꼬투리를 하나씩 까서 간식처럼 먹어도 좋지만 콩알만 따로 잔뜩 모아 믹서에 갈고 딱 소금, 후추만 넣으면 든든한 한 끼도 된다. 밥, 샐러드, 카레…. 어디에 넣어도 잘 어울린다. 몇 번 먹지 않은 것 같은데 완두의 계절은 매년 훌쩍 지나가버린다.
완두를 길러 먹는 것의 묘미는 시장과 달리 텃밭에는 다양한 숙기의 완두가 있다는 거다. 아래편엔 벌써 꼬투리가 말라붙어 채종하면 딱 좋을 완두가 있고, 중간에는 딱 여물어 조리해 먹으면 좋을 완두가, 가장 윗부분에는 아직 알이 차오르지 않은 완두가 있다. 콩이 부풀기 전 수분이 잔뜩 오른 어린 완두 꼬투리를 갈라 입속에 훌훌 털어 넣는 것은 기르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인데, 어린 완두에서는 완숙 완두와는 다른 고소한 맛이 난다. 땅콩의 고소함과 비슷하면서 촉촉하다. 텃밭에 놀러 온 손님 중 누군가는 초당옥수수 맛이 난다고 할 만큼 다 익은 완두보다 단맛이 강하다! 완두를 기르면서 풋완두를 맛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 찾아가 입에 넣어주고 싶다. 이 맛을 나만 안다는 것은 완두의 재능 낭비니까.
한때는 완두를 다섯 종류나 키웠지만 좁은 밭에서 네 종류를 기르며 씨앗을 받으면 제대로 맛보지도 못해 작년에는 세 종류로, 올해는 두 종류로 줄였다. 그렇게 ‘토종 노랑완두’와 어딘가에서 전해진 ‘스노피(Snow pea)’가 텃밭에 남았다. 스노피는 깍지를 먹을 수 있는 완두인데, 우리나라 토종에도 깍지를 먹을 수 있는 붉은완두가 있지만 크기가 훨씬 커 먹을 것도 많고 식감도 부드러워 우리나라 토종을 과감히 포기했다. 역시 내 선택은 옳았다. 스노피를 기름에 볶고 맥주 한 캔을 딴 초여름 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여름을 연다.
글·사진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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