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농사가 끝나면 빈 틀밭(상자 텃밭)을 하나 만든다. 틀밭 아래 몇 달 동안 모아둔 상자를 두껍게 깔고 그때부터 겨우내 ‘보카시 컴포스팅’으로 발효시킨 음식물 쓰레기를 부지런히 날라다 쌓는다. 음식물 쓰레기를 넣기 전에는 동네 카페에 들러 커피박이나 커피콩을 볶을 때 나오는 원두 껍질인 ‘채프’(chaff)를 받아 음식물 쓰레기 위에 층을 한 겹 쌓아준다. 겨울에는 음식물 쓰레기만 쌓아도 벌레가 생기거나 냄새가 심해지는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모두에게 접근이 쉬운 공간에서 음식물 쓰레기만 쌓아두면 자칫 열린 쓰레기장이 되기 십상이다. 커피박이든 낙엽이든 마른 농사 부산물이든, 음식물 쓰레기는 꼭꼭 감춰두는 편이 문제를 줄일 수 있다.
보카시 컴포스팅은 제1487호 ‘농사꾼들’에서 소개한 퇴비클럽에서도 함께했고, 김송은 농사꾼도 실천한다고 소개한 방식(제1493호)이다. 실내에서 전용 퇴비통에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2~3일에 한 번 발효 과정에서 나오는 침출수를 제거해주는 것만으로도 음식물 쓰레기가 빠르게 발효돼 한 달 만에 퇴비로 쓸 수 있는 상태로 변한다. 지금까지 보고 듣고 실천한 퇴비는 넣으면 안 되는 것 천지에 뒤집어주거나 탄소·질소 비율을 맞춰야 하지만, 이건 대부분의 썩는 쓰레기를 넣어도 될 만큼 퇴비 재료에 제약이 없고 수분만 잘 제거해주면 실패도 없다! 수분은 따로 모아 액비로 쓸 수 있고 뒤집는 노동을 안 해도 되는데다, 뒤집는 과정에서 빠져나가는 질소도 붙잡아 양분으로 줄 수 있다니. 나는 도저히 이 방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음식물 쓰레기와 커피박을 틀밭에 가득 쌓아두면 겨울에도 분해 작용이 일어나 며칠 뒤에는 부피가 줄어든다. 그렇게 빈자리에 쌓고 유기질을 반복해서 쌓아주다보면 어느새 봄이 온다! 파종을 시작할 즈음 틀밭의 빈 부분에 흙을 채워주면 여름 작기까지 퇴비를 따로 주지 않아도 거뜬한 틀밭 하나가 뚝딱 완성이다. 음식물 쓰레기 퇴비에는 분해 과정에서 가스를 마구 내뿜어 식물에 해를 입힐 거라는 편견이 따르지만, 벌레와 미생물이 함께 먹으며 분해하기 때문에 식물에 미치는 해는 없다. 높은 두둑인데다 땅속에 입자가 큰 유기물이 잔뜩 있어 비가 많이 와도 물이 잘 빠지는데 수분도 오래 잡아줘 오히려 작물이 크는 데 도움을 더 많이 받았다. 어떻게든 일을 하나라도 줄여보려 잔꾀를 부리는 농사꾼은 이렇게 외친다. ‘퇴비 만들기가 세상에서 제일 쉬웠어요!’
외국 커뮤니티에선 너무 쉬워서 언제든 따라 해도 부담 없는 퇴비 실천법을 종종 소개한다. ‘열쇠구멍 정원’(Keyhole Garden)은 동그랗게 만든 틀밭 한가운데에 열쇠구멍처럼 동그란 퇴비 구덩이를 두어 음식물 쓰레기를 쌓아 바로 양분으로 보내는 방법이다. 길게 쌓은 두둑에 작물을 심고 바로 옆에 깊은 골을 만들어 음식물 쓰레기를 잔뜩 쌓아 식물에 바로 보내는 방식도 있다. 음식물 쓰레기를 더러운 것으로 보지 않고 양분으로 바라보는 퇴비 활동에는 간편함과 유쾌함이 담겼다. 우리나라에서도 땅이 일상에 들어와 있다면 음식물 쓰레기를 마냥 더럽게만 보지 않고 우리 환경에 맞는 다양한 실천법이 공유될 텐데, 모두에게 땅에 대한 접근권이 없는 게 못내 아쉽다.
글·사진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농사꾼들: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지역이 다른 네 명의 필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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