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경북 의성의 자두농장을 취재했다. 제초제를 치지 않고 풀과 함께 자두나무를 기르는 곳이라 들었는데, 과수원 옆으로 소 마흔 마리가 사는 작은 우사도 있었다. 왜 과수원에서 소까지 기르는지 묻자 ‘퇴비’ 때문이란다. ‘나무를 키우기 좋은 땅을 스스로 만들 줄 아는 것이 농사의 근본’이라며.
그처럼 땅을 순환의 장소로 바라보니 농사는 의미로 가득했다. 그동안 채소 껍질이나 자투리(생쓰레기)를 모아 퇴비로 만들고 비닐을 쓰고 싶지 않았던 것도 땅을 만들기 위한 실천일 수 있겠구나. 내가 버리는 것을 정성껏 순환해 땅에서 작물을 길러 먹는 대단한 일을 내가 하고 있었구나! 그때부터 음식물 쓰레기와 썩을 수 있는 것을 한데 모아 퇴비로 만드는 일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때로는 생분해 플라스틱처럼 낯설거나 곰팡이가 핀 것처럼 ‘이런 것도 괜찮을까’ 싶은 것도 넣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곰팡이는 사라지고 까만 퇴비가 돼 있었다. 퇴비가 될 때까지 너무 긴 시간이 걸리는 생분해 플라스틱이나 휴지 같은 물건도 내 일상에서 줄어들거나 사라졌고 버리는 쓰레기양도 어마어마하게 줄었다. 뭘 넣으면 향기로워지고 뭘 넣으면 구린내가 나는지 탐구하며 퇴비통을 뒤섞는 일은 나의 오래된 취미가 됐다.
이런 실천을 4년 동안 친구, 이웃과도 나눠오며 개인의 실천에 대단한 힘이 있다고 느꼈지만 가끔은 무력해졌다. 여전히 쓰레기를 고민하는 사람은 소수인 듯했고, 이웃과 함께 쓰는 마을의 퇴비간을 두고는 종종 “누가 뒤섞어주느냐”는 문제로 갈등이 일어났다. 이웃과 만드는 퇴비로는 꽃만 키우니 남아돌 때가 많아, 쓰이지 않고 쌓이는 퇴비도 고민이었다.
개인의 실천도 소중하지만 결국 도시의 음식물 쓰레기 문제는 퇴비가 꼭 필요한 농민에게 가야 했다. 마침 가까이에 ‘농부시장 마르쉐@’가 있지 않던가. 2023년으로 11년차를 맞이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농부시장 마르쉐는 조직된 농민들과 팬을 자처하는 단골 소비자가 있다. 게다가 마르쉐 역시 순환을 고민하고 시도한 시간이 길어 서로의 고민은 순식간에 ‘퇴비클럽’이라는 이름으로 마르쉐 정기 프로그램이 됐다.
순환을 지향하는 소비자 16명과 퇴비를 일부 자급하거나 실천해보고 싶은 농민 7팀은 두세 명씩 ‘한 팀’이 돼, 매달 둘째 주 일요일에 만나 퇴비를 전달했다. 이렇게 모인 퇴비는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 동안 총 555ℓ.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각자의 힘과 연대로 정직하게 땅으로 순환시킨 양이다.
6개월 동안 매달 만나고 퇴비를 탐구한 우리는 음식물 쓰레기만 순환한 것이 아니다. 농민들은 퇴비를 정성껏 모아준 소비자에게 감사했고, 소비자는 내가 모은 퇴비를 가장 바라는 방식으로 잘 써주면서 생태적인 농사를 짓는 농민에게 감사했다. 농민은 소비자에게 퇴비 냄새를 좋게 해주는 미강(쌀겨)이나 톱밥, 퇴비를 써서 기른 농산물을 기꺼이 나눴고, 농민과 한 팀이 된 소비자는 직접 농장에 찾아가 퇴비를 전달하면서 농사일에 일손을 보태기도 했다. 같은 문제를 고민하고 각자의 역할을 발휘한 우리는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깊은 연결감을 느꼈다. 이 연결의 힘으로 당분간 지구를 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조금 더 연장될 것 같다.
글·사진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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