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나무밭에서 풀을 베는 모습.
‘후두두둑’ 제초기 칼날에 허리까지 오는 풀이 맥없이 쓰러진다. 풀이 그새 많이도 자랐다. 3개월도 안 됐는데 나무처럼 단단해진 풀도 많다. 반원을 그리며 반 발짝 조금씩 나아간다. 제초할 땐 돌을 조심해야 한다. 돌이라도 부딪치면 제초날이 몸에 튈 수도 있다. 안전장비는 필수다. 얼굴을 보호해주는 헬멧과 허벅지를 막아주는 보호대를 단단히 찬다.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옷은 다 젖었다. 아침 일찍 나왔는데 햇살이 따갑다.
오늘은 감나무밭 풀 베는 날이다. 감나무밭 제초는 1년에 두 번 정도 한다. 5월쯤 한 번, 8월 중순에 한 번 한다. 중간에 친환경 재료로 만든 약도 쳐야 했는데 나는 게으른 농부다. 수확할 때까지 기다려야겠지만 알이 제법 달렸다. 지난해엔 많이 달렸는데, 올해는 해걸이 때문에 수확량이 덜할 수도 있겠다. (해걸이란 일정 기간 작물 재배를 하지 않고 쉬는 것인데, 과실수가 한 해는 많이 맺었다가 한 해는 적게 맺기를 반복하는 현상도 말한다.)
제초가 힘들긴 해도 재밌다. 풀을 해치운다는 생각보다 ‘이 풀이 감나무밭에 좋은 거름이 되겠구나’ 하면서 한다. 벤 풀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땅을 두둑이 덮어준다. 땅을 마르지 않게 해주고, 다양한 미생물의 서식지를 만든다. 이 풀을 지렁이나 콩벌레가 와서 먹고, 좋은 거름을 만들어준다. 이쯤 되면 제초기가 아니라 ‘거름생성기’라고 부르는 게 맞지 않을까.
귀농 초반엔 마을에서 쓰는 휘발유 제초기를 빌려 썼다. 기름에 기계 무게까지 보통 무거운 게 아니다. 오래돼서 그런지 시동이 자꾸 꺼져, 제초기를 놨다가 멨다가 몇 번은 반복해야 기계가 돌아갔다. 풀을 베다보면 플라스틱 날이 날아가버리는데 다시 끼느라 시간을 꽤 쓴다. 흔들림도 얼마나 강한지 처음 제초기를 돌린 날엔 손이 떨려서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휘발유 냄새는 얼마나 독하던지.

감나무밭에서 자란 생강.
곡성에 와선 전기제초기를 큰마음 먹고 구매했다. 전기가 좀더 생태적이기도 하고, 가볍고, 떨림도 덜하다. 힘이나 배터리 용량도 기존 것만큼 좋다. 1시간30분쯤 돌리고, 짝꿍도 나눠 돌리니 감나무밭의 절반 정도 제초를 마쳤다. 예전보다 훨씬 체력이 덜 든다. 농사 체력이 조금 늘어난 것도 있는 듯해 스스로가 대견스럽다.
감나무밭 아래 남는 공간에 이런저런 작물을 심었다. 반그늘을 좋아하는 생강을 심고, 고라니나 멧돼지 피해가 없는 들깨도 심었다. 풀 사이에서 나름 열심히 자라줬다. 들깨는 벌레가 많이 먹었다. 멀쩡한 깻잎을 따서 장아찌를 해야겠다. 생강은 풀에 뒤덮여서 잘 안 보인다. 조금씩 뒤져보니 보인다. 풀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잎을 높이 올렸다. 지난해에 생강 농사를 지은 게 이렇게 도움이 된다. 중간중간에 다른 나무들도 심었다. 호두나무, 무화과나무, 라일락, 포도나무, 복숭아나무 등이다. 아직 나무막대기를 꽂아놓은 수준이라 조심해서 제초해야 한다. 뭣도 모르고 훅 베면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자란 시간이 순식간에 날아간다.
올해 중으로 이 감나무밭에 닭을 풀어 키울 예정이다. 감나무밭은 다랑논처럼 층층이 나뉘어 있는데, 이곳에 담을 층층이 돌아가면서 세워 닭을 풀어놓으려 한다. 닭은 풀과 각종 벌레를 사정없이 먹을 것이다. 닭똥은 감나무밭을 비옥하게 해줄 것이다. 농부는 매일 닭을 풀어주고 약간의 사료를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덕분에 풀을 베고 퇴비 주는 일을 덜 수 있다. 인간도, 닭도, 감나무도 행복한 밭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감나무의 감은 얼마나 달고 맛있을까.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농사꾼들: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지역이 다른 네 명의 필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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