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는 안 된다’는 사람이 점차 늘어난다. 과학자 단체 ‘과학자반란’은 2022년 4월 회원 1천여 명이 연구실을 나와 세계 곳곳에서 시위를 벌였다. 기후위기가 위험수위를 넘는데도 사회와 정치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중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거나 미국 항공우주국(NASA) 소속인 이도 있었다.
이들은 그 시기 발표된 IPCC 6차 보고서에서 기업과 부자, 기득권의 책임을 강조한 내용이 결국 빠졌다며 ‘항공 부문에서 상위 1%가 온실가스 배출량 50% 차지’ 등 삭제된 보고서 초안 내용을 공개했다. 기후위기 대응에 필요한 거대한 변화가 이들 탓에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향후 IPCC 보고서 작성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최근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탈성장 담론의 하나로 생태경제학을 소개한 책 <기후를 위한 경제학>(착한책가게)을 펴낸 김병권 전 정의당 정의정책연구소장(사진)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이들 중 하나다. 2023년 3월13일 서울 합정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먹고사는 문제와 기후 문제를 어찌 접합할지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자만이 아니에요. 2022년 COP27(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뒤 나오미 클라인(캐나다 언론인이자 기후운동가)이 ‘이런 회의 계속해야 하느냐, 다른 대안을 시도해야 하는 거 아니냐’를 트위터에 올리면서 반향이 컸고, (영국 일간) <가디언>도 크게 다뤘는데, 빌 맥과이어 같은 이를 중심으로 ‘1.5도 목표 이제 끝났다’ 이렇게 보거든요.”
이른바 ‘레드라인 1.5’에 대한 사망선고다. 지구 온도 추가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10년의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는, 파리협정에 따른 인류의 공동목표가 이미 무너졌다는 것이다. 기후과학자인 빌 맥과이어 영국 런던대학 교수는 <가디언> 기고글(2022년 9월)에서 “파리협정(2015년)에서 2030년까지 절반이 지났는데도 온실가스는 오히려 10% 늘었다. 2030년 목표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졌다”며 “향후 5년 내 1.5도를 한 번 이상 넘길 가능성이 적어도 40%”라고 밝혔다.
김 전 소장은 이 내용을 소개하며 “지난 3년 동안 라니냐가 굉장히 길게 왔다. 라니냐는 온도를 내리는 역할인데 역사적으로 가장 더웠다. 2023년과 2024년에 엘니뇨가 발생하면 쉽게 1.5도를 넘길 것”이라며 “2023년 여름에 더워지면 아마 세계 기후 캠페인에도 지각변동이 있을 거다. 탈성장이나 경제정책이 본격적인 이슈로 부상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무엇보다 기후 문제와 경제정책의 접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후가 중요하다지만 정작 먹고사는 문제로 가면 2순위로 밀리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은 탈성장 자체를 매우 흥미 있게 받아들인다. 책도 많이 번역됐고. 그런데 극단으로 갈린다. 한쪽에선 자본주의 자체가 문제란 생태사회주의적 입장으로, 또 한쪽은 (주류경제학 관점의) 녹색성장이 있다. 한데 경제가 어떻게 탈성장으로 가능하냐, 정책이나 전략이 있냐고 물으면 ‘꽝’이다. 그러니 그 배경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고 책을 낸 이유를 설명했다.
그가 보기에 ‘그린뉴딜’ 논의가 국내에서 끊긴 점이 아쉽다. “경제성장 얘기를 피하면서 일자리와 경제, 기업 문제를 같이 풀겠다는 나름의 수였는데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반면 유럽과 미국에선 2019년 각각 ‘그린딜’과 ‘그린뉴딜’로 시작하는 관련 논의가 진화를 거듭해 제도적으로 자리잡았다. 화석연료 조기 퇴출과 재생에너지로의 더 빠른 이행, 유럽 내 녹색산업 기반 구축을 위한 유럽연합의 리파워EU(2022년), 그린딜산업계획(2023년 2월)이 그 결과물이다. 미국도 ‘진보 진영 스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민주당 하원의원의 그린뉴딜 결의안(2019년 2월)에서 시작한 사회적 논의가 물가상승 억제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귀결됐다.
“한데 우린 2020년 한 해 얘기되고 끝났죠. 2021년 탄소중립(기본)법이 만들어졌지만 거기서 흐지부지되고 그 와중에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할) 신공항 특별법을 통과시키고 있잖아요. 한국은 맥락이 연동되지 않으면서 좌충우돌하는 것 같아요.”
김 전 소장은 무엇보다 ‘탈성장이 되면 사회가 정체하고 개인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식의 막연한 이해를 경계했다. “탈성장은 그런 게 아니거든요. 총량은 팽창하지 않지만 그 안에서 줄고 느는 것 사이 다이내믹한 게 있죠.”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생태적 조정’이 이뤄진다는 의미다. 특히 화석연료 기반의 ‘회색투자’는 줄고 재생에너지 등 ‘녹색투자’는 는다. 자동차나 도로를 늘리지 않지만 대중교통, 자전거 관련 투자는 늘린다. 이런 교체 속에 경제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성장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한다며 “올해(2023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한국 정부(기획재정부) 발표 성장률 전망치가 1.6%인데 이는 21세기 들어 세 번째로 적은 수준이다.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다음”이라며 “이전엔 2%대여도 비상이 걸려 ‘강력한 부양책’ 운운하고 추경 하고 그랬는데 이젠 그런 얘기조차 없다. 우리도 원하든 원치 않든 일본처럼 사실상 제로성장으로 가는 거다. 게다가 인구 감소가 이렇게 빠르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몰라도 총GDP는 늘기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럴 때일수록 “‘1.5도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항공기 과다 이용이나 사치품 광고 등 생태적 한계를 넘는 행위를 제한하고 과소비를 억제하는 과세 등 제도적 강제 장치를 둬 일반 시민들이 지침으로 참고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젠 원한다고 해서 성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사적 충분성과 공적 풍부함’으로 얘기되는 것처럼, 사치에 대한 무익한 경쟁에서 벗어나 필요에서 멈추고 만족을 느끼는 가치 변화를 추구해야 해요. 이젠 하고 싶어도 못하는 성장이 아닌,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때라 생각합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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