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쓰레기로드] “음식물쓰레기 보면 사는 사람 알 수 있죠”

서울시 도봉구 주민이 내놓은 음식물쓰레기가 사료가 되기까지…
‘정확한 용량을 물기 없이 비닐에 싸지 않고’ 어렵네
등록 2021-08-02 16:58 수정 2021-08-03 11:48
코로나19로 집콕 하며 배달음식, 많이도 시켜 먹었다. 배부르게 먹고 남은 ‘음식’을 바라볼 때, 이 냄새나고 끈적거리는 ‘쓰레기’를 눈앞에서 얼른 치워버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내다버리면서 죄책감도 같이 버린다.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버리면 그 죄책감은 좀더 가벼워질지 모른다. 버리고 온 쓰레기는 잊히고 끼니때는 또 다가온다.
뒤돌아선 그때, 음식물쓰레기의 여정은 시작된다. 매일 새벽 집 앞을 오가는 누군가의 손에 실려 한데 모인다. 컨베이어벨트에 실려 찢고 털고 부수고 말리고 쪄서 갈색 가루가 돼 먹이로, 퇴비로 쓰인다. 잊어버리려 했던 죄책감을 좇아갔다._편집자주
서울 도봉구 도봉1동 단독주택 단지의 음식물쓰레기를 ㄱ업체 홍아무개씨가 수거하고 있다.

서울 도봉구 도봉1동 단독주택 단지의 음식물쓰레기를 ㄱ업체 홍아무개씨가 수거하고 있다.

“촥.”

음식물쓰레기로 가득 찬 비닐이 물기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불어터진 밥알과 배추 쪼가리 사이로 선홍색 액체가 길바닥에 줄줄 흘러내렸다. 물기에 숨어 있던 달걀 껍데기도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고.” 지켜보던 기자의 탄식이 절로 나왔다. 음식물쓰레기 수거업체에서 일하는 홍아무개(36)씨는 익숙한 듯 목장갑 낀 손으로 내용물을 벅벅 긁어 그의 허리까지 오는 전용 수거 용기에 몇 번을 옮겨 담았다. “이렇게 물 많은 쓰레기가 많~아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수거통 끌고 하루 2만~3만 보 걸어

2021년 7월5일 서울 도봉구 음식물쓰레기 수거업체를 따라다니며 음식물쓰레기 수거 현장을 살폈다. 도봉구는 음식물쓰레기 수집·운반 대행업체 3곳이 가정에서 나오는 음식물쓰레기를 수거해간다. <한겨레21>이 만난 ㄱ업체는 도봉 1·2동, 방학 1·2동을 담당한다.

음식물쓰레기 종량제의 수거 방법은 ①버리는 양에 따라 수수료를 부과하는 RFID 계량 방식 ②버리는 양이 적힌 납부필증을 슈퍼나 편의점에서 사서 전용 용기에 부착한 뒤 배출하는 방식 ③전용 봉투 방식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그림 참조), 지자체 상황에 맞는 방식을 선택하게 된다. 도봉구는 RFID 계량 방식과 납부필증을 부착한 전용 수거 용기 배출 방식을 사용한다. 이렇게 버려진 음식물쓰레기를 수거하기 위해 ㄱ업체의 수거차는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새벽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주택가 골목과 아파트 단지를 훑는다.

낮 최고기온 28도를 기록한 이날 오전, 음식물쓰레기 수거차가 도봉1동 다세대·다가구주택 밀집 지역에 정차했다. 차에서 내린 홍씨가 120ℓ짜리 수거통을 끌고 길을 나섰다. 이 지역은 납부필증을 부착한 전용 수거 용기를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비워내야 한다. 그는 수거통을 끌고 좁은 골목길을 빠른 걸음으로 통과했다.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집을 돌아야 하기에 속도를 높이고 동선을 잘 짜는 게 중요하다. 홍씨는 앞선 지역에서는 하루 3만~4만 보씩 걸었는데 동선이 잘 짜인 ‘팀장님’ 구역으로 넘어왔더니 하루 2만~3만 보만 걷게 됐다.

납부필증에 적힌 양보다 쓰레기를 넘치게 내놓는 곳이 많은지 홍씨에게 물었다. “여기에는 별로 없어요. 저쪽으로 가면 바로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아니나 다를까 다음 골목에서 홍씨가 주머니에서 수거가 불가하다는 경고장을 꺼내 붙이는 일이 잦아졌다. “한 구역을 오래 돌다보니 집집마다 쓰레기 버리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돼요.”

홍씨는 지역주민들과 마주치는 일이 별로 없다. 새벽 6시에 출근하도록 업무 일정이 짜였지만 이날도 새벽 4시에 나와 수거를 시작했다. 출근길 차량 혼잡을 피하고, 음식물쓰레기 수거차를 반기지 않는 사람도 있어서다. 주민 얼굴을 보지 못하지만 그 집에 사는 음식물쓰레기의 얼굴은 잘 안다. 어떤 식당은 납부필증을 비닐에 붙이고 어떤 이는 수거함에 붙이고 어떤 곳은 물이 많다. 어떤 곳은 구더기가 자주 끓고 어떤 곳은 정량에 넘치게 쓰레기를 내놓는다.

물 때문에 터져버린 음쓰 봉투

“2ℓ짜리 납부필증을 붙여놓고 3ℓ를 버리기도 하고요. 웬만하면 다 수거하려는데, 한 번씩 경고장을 붙여놔야 다음에 이렇게 안 내놔요.” 경고장을 붙인 뒤에는 주소와 함께 사진을 찍어 남겨둔다. 나중에 주민이 “수거하지 않았다”고 민원 전화를 걸 경우 증거로 제시하기 위해서다.

동네를 한 바퀴 돈 지 15분 만에 전용 수거 용기 턱밑까지 음식물쓰레기가 가득 찼다. 참외 껍질, 밥알, 상추 등이 뒤섞인 가운데 족발로 추정되는 돼지뼈, 송이버섯 포장지, 달걀 껍데기 등도 보였다. 물기도 많았다. 이런 물기는 음식물쓰레기의 약 80%를 차지한다. 여름철에는 악취와 해충을 유발하고, 겨울철엔 음식물쓰레기를 꽝꽝 얼게 해 용기에 들러붙거나 용기를 깨지게 하는 원인이 된다. ㄱ업체 박명주(41) 팀장은 말한다. “요즘 싱크대 개수대에 탈수 기능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걸 이용해주는 게 좋죠.”

도봉구는 2016년 8월 음식물쓰레기 종량제 대신 전용 수거 용기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음식물쓰레기 양은 물론 일회용 비닐 사용도 줄이자는 취지다. 종량제봉투는 2차 폐기물로, 비닐 조각이 혼합돼 들어가 음식물쓰레기 자원화(사료화·퇴비화)를 방해한다. 2012년 6월 환경부는 음식물류폐기물 재활용 제품의 품질 제고를 위해 비닐봉지 사용을 단계적으로 금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현실에선 음식물쓰레기를 비닐째 전용 수거 용기에 넣어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름에 냄새도 심하고 용기를 그때그때 세척하기 힘들어서 그런지 아직은 비닐째 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30분간의 골목 작업에서 음식물쓰레기를 전용 수거 용기에 그대로 버린 경우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수거차량은 2천 가구가 모여 사는 대형 아파트 단지로 이동했다. 먼저 아파트 단지 내 식당가로 향했다. 7월1일부터 식당도 납부필증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전에는 수거차량에 수거통을 올려 계량한 무게대로 부과하는 방식이었다. 상가 관리소장이 나와 수거 현장을 지켜보면서 불만을 제기했다. “수거를 이랬다가 저랬다가, 뭐가 어떻게 되는지 도통 모르겠어.” 쓰레기장에는 납부필증 용량을 초과해 통을 삐져나온 음식물쓰레기가 여럿 보였다. “쓰레기가 얼마나 나올지 어떻게 알아. 어떤 때는 적게 나오는데 100ℓ짜리를 붙여야 해?” 납부필증을 어디에서든 살 수 있으며 여러 용량의 납부필증이 있다고 답해줬지만 관리소장은 계속 불만을 제기했다. 홍씨는 오늘은 경고장을 안 붙이고 모두 수거해 가겠다고 말했다.

지상엔 투입구, 지하엔 사료화 시설

아파트 단지는 세대별 종량제(RFID)를 통해 음식물쓰레기를 모아 버린다. 음식물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용량에 따른 비용이 부과되는 방식으로, 도봉구 ‘공동주택’ 상당수(95.7%)가 이런 세대별 종량제 방식을 이용한다. 아파트, 빌라, 다세대주택에 현재 984개(2021년 1월 기준)가 설치됐다. 도봉구 관계자는 “이전에는 많게 버리든 적게 버리든 관리비 고지서에 정해진 금액이 찍혔다. 그러다 버릴 때마다 무게와 금액이 표시되다보니 자연스럽게 음식물 감량 효과가 나타난다. 음식물 물기라도 더 짜서 버리게 되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세대별 종량제는 공동주택 지역에서 점차 확대되고 있다. 서울 지역 공동주택의 RFID 보급률은 95% 정도다.

3.5t 크기의 수거차가 꽉 차면 서울 도봉구음식물자원화센터에 가서 비워내고 다시 수거 현장으로 돌아오는데, 수거량이 많은 월요일은 3~4번 오가야 한다. 계절의 흐름도 있다. 여름에는 매일 버리는 주민이 많아 양이 일정하고 겨울은 상대적으로 들쭉날쭉하고 양이 적다. 그렇게 도봉구에서 업체 3곳이 수거해 오는 음식물쓰레기의 총량은 하루 평균 81t(2021년 상반기 기준)에 달한다.

*[쓰레기로드] 음쓰가 사료가 되기까지 기사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50721.html

글·사진 고한솔 기자 sol@hani.co.kr·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