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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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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그늘, 야생생물의 피난처

한국 DMZ 주변의 생명다양성 보전과 독일 그린벨트 프로젝트
등록 2021-06-13 11:45 수정 2021-06-18 01:31
옛 동·서독 접경지역에서 동독 쪽이 서방 망명을 시도하는 사람을 사살하던 이른바 ‘죽음의 지대’. REUTERS

옛 동·서독 접경지역에서 동독 쪽이 서방 망명을 시도하는 사람을 사살하던 이른바 ‘죽음의 지대’. REUTERS

접경인문학 연재 순서

① 팬데믹과 접경

② 코로나 시대, 국가와 민족의 ‘귀환’

③ 행성적 사이버네틱스

④ 국경여행, 경계에 선 삶들의 만남

⑤ 접촉지대에 산다는 것

⑥ 의료와 문학 접촉지대와 치유공간

⑦ 과학과 미신의 경계에서

⑧ 중국-홍콩 체제의 변화

⑨ 옛 동·서독 접경과 DMZ 생태계

2020년 1월 휴전선 비무장지역(DMZ)의 접경지역인 강원도 철원군 철원평야에 두루미 한 쌍이 먹이를 찾고 있다. 하늘엔 다른 두루미 무리가 날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2020년 1월 휴전선 비무장지역(DMZ)의 접경지역인 강원도 철원군 철원평야에 두루미 한 쌍이 먹이를 찾고 있다. 하늘엔 다른 두루미 무리가 날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옛 동·서독 접경지역의 도마뱀과 한국 비무장지대(DMZ)의 두루미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동독군 병사들이 일단 울타리와 장애물로 이뤄진 경계를 넘은 망명자들을 향해 총을 쏘는 이른바 ‘죽음의 지대’가 있던 건초지를 지나갈 때, 도마뱀은 목초지 끝자락에 이르러 적당한 서식처가 없는 커다란 농경지를 마주하게 된다. 두루미는 DMZ의 안전한 보금자리를 떠나 추운 겨울 아침 남쪽 논으로 먹이를 찾아 남하하면 논 대신 새로운 펜션, 비닐하우스와 도로, 인삼밭과 소규모 기업형 농업지대는 찾을 수 있어도 먹이는 점점 더 찾기 힘들 것이다. 독일의 옛 접경지역과 한국 DMZ 모두, 접경지역과 인접 서식지의 연결이 접경지역 자체의 생태적 가치를 결정하는 데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것은 종종 간과되는 교훈이다.

한국에선 분단과 뒤이은 전쟁으로 DMZ가 생겼고, 1945년 독일 분단은 전국에 철의 장막을 만들었다. 독일 국경은 한반도 국경만큼 뚫을 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특히 동독에서의 망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분단 기간 내내 경계 태세가 깔려 있었다. 동독 지역에선 오래된 운송 노선이 붕괴했고, 노동자와 기업은 이 지역을 떠나 더 부유한 경제 중심지를 향해 서쪽으로 이주했다. 동부 지역에선 대부분 주민이 강제로 쫓겨났고, 복잡한 국경 방어체계에 따라 사람들은 국경에 도달할 수 없었다. 물론 그 방어체계는 ‘자본주의 침략자’로 보이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서쪽으로 향해 있지 않다. 대신 동독인의 서방 망명을 막기 위해 동쪽을 향해 있었다.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땅으로

거기에는 망명자가 총에 맞을 수 있는 ‘죽음의 지대’가 있어 정기적으로 관리된다. 최후의 치명적인 이 구간은 건초지로 약 100m 길이의 작은 지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생태학적으로 이곳은 특정 종의 조류, 양서류, 파충류에 점점 더 희귀한 서식지가 됐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서독의 환경운동이 활발해지자 곧바로 사람들의 관심은 비교적 풍부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이 배후 지대에 집중됐다. 1976년 이후 독일 접경지대를 따라 조류 지도가 만들어졌다. 1981년 환경보호론자들이 동식물 서식지로 보존하기 위해 그린벨트 인근 지대를 처음 사들였다. 이는 인간 활동의 제한에 힘입어 양쪽 접경이 자연의 피난처로 발전했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면 나중에 그린벨트라고 부르지만 그 전에는 동독 국경을 따라 이어지는 작은 지역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자연의 관점에서 바라본 국경지역이라는 중요한 이슈에 대한 관심은 환경론자들 사이에서 이미 커지고 있었다. 강과 개울에서 헤엄치는 유라시아 수달을 발견했고, 희귀한 먹황새가 둥지를 틀었고, 흰눈썹울새와 때까치 같은 작은 새가 많이 살았다. 파충류, 양서류, 곤충, 수많은 희귀 식물도 번성했다. 자연 다큐멘터리영화 제작자 하인츠 질만이 1988년 <국경의 그늘 속 동물들>을 찍기 위해 국경선을 따라 여행하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2019년 8월 독일 중부 타이스퉁겐 인근의 옛 동·서독 분단선에 있는 국경 박물관에 전시한, 한때 유럽을 동서로 가른 철의 장막이 있던 국경선의 흔적을 찍은 사진. REUTERS

2019년 8월 독일 중부 타이스퉁겐 인근의 옛 동·서독 분단선에 있는 국경 박물관에 전시한, 한때 유럽을 동서로 가른 철의 장막이 있던 국경선의 흔적을 찍은 사진. REUTERS

1989년 고안한 ‘그린벨트’

1989년 가을부터 동독 사람들이 평화혁명을 전개하고 1989년 11월9일 베를린장벽이 무너졌을 때 환경운동가들은 행동할 준비가 돼 있었다. 정확히 한 달 뒤인 1989년 12월9일, 독일 환경단체 분트(BUND)는 동독과 서독에서 온 자연보호 활동가 400여 명의 첫 회의를 조직했다. 이 회의에서 ‘그린벨트’라는 이름이 고안됐고, 모든 참가자는 독일 전역에서 그린벨트의 독특한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한 첫 번째 결의안에 동의했다. 그렇게 그린벨트 프로젝트가 탄생했다. 시작과 동시에 그린벨트는 독일 최초로 전국적 규모의 자연보호 프로젝트가 됐을 뿐만 아니라 최근 독일 역사의 살아 있는 기념물이 됐다.

독일 통일 이후 산업계의 이해관계가 얽힌 강력한 로비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규모 환경사업을 지정하는 아주 작은 기회의 창구가 있었다. 따라서 그린벨트 같은 큰 규모의 환경사업에 유리한 상황이 존재했다. 또한 동서를 다시 연결하기 위해 새로운 도로사업이 많이 제안되는 등 다른 경제적 요구가 압박받는 상황에서 빠르게 행동하는 것이 절실했다. 그중 하나는 뮌헨과 슈투트가르트 같은 남부의 경제 중심지를 동독 수도 베를린과 연결하는 프로젝트인데, 현재의 그린벨트를 관통하는 도로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그 이유는 설득력이 있었다. 동독에선 사적 토지소유권이 없었기에 새로운 도로를 계획하기가 쉬웠다. 하지만 다행히 환경적 이유가 우세했다. 그린벨트는 특별 지정된 구역의 일부로 독일연방에 만들어졌다. 그중 일부는 가장 강력히 보호하는 방식의 자연보호구역, 경관보호구역 또는 문화유산, 그리고 더 뒤에는 생물권보호구역, 자연공원이나 하르츠 산지 같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지난 30년 동안 이 지역의 보호 상태가 강화됐다. 지금은 대부분이 국가 지정 천연기념물이다.

그러나 이후의 자연 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린벨트 자체는 효과를 나타내기에는 너무 작았다. 주변의 모든 사유지가 보호되는 것은 아니었다. 농부들은 이 땅에서 농사지어 돈 벌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린벨트의 가치를 높이는 데 활용되는 다양한 정책에서 그린벨트와 인접한 서독 지역에서의 계약농업이 중요해졌다. 바이에른과 헤센의 주정부에선 수익성이 낮지만 생태적으로 더 적합한 방식으로 농사지을 수 있게 농부들에게 보조금을 줬다. 예를 들어 양을 키우면서 건초지를 유지하거나, 삼림지대의 자연천이(시간의 흐름에 따른 생태계 변화)를 방지하거나, 들판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살충제를 덜 사용하는 것이다. 그린벨트 보존은 개별 토지 소유자의 과제가 아니라 국가적 과제라는 점에서, 계약농업에 따라 토지 소유자는 생태학적으로 적합하지 않은 용도로 대규모 토지 전환을 하지 않고도 수익에 만족할 수 있었다.

이제 한국 DMZ를 생각해보자. 분단 상황이 훨씬 더 철저하고 가혹하고 길었고, 또한 DMZ 지역 바깥에선 한국이 유례없는 경제발전을 했기에, 독일의 경우보다 어쩌면 훨씬 더 막대한 생태적 가치가 있는 지역이다. 비록 간신히 오를 수 있는 산에서 벌어지는 대형 도로사업, 하천을 훼손하는 하천 ‘개선’ 사업, 자연보호구역에 쓰레기를 버리는 흔한 문제,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막겠다며 모든 산에 울타리를 치는 말도 안 되는 대책이 악영향을 미쳐도, DMZ 동부의 산림지대는 대체로 온전히 보존되고 있다. 이곳은 생태적 가치가 적은 만큼 인간의 개발 압박도 다소 낮다.

2019년 5월 경기도 파주 조리읍 파주삼릉 내 공릉 능침 뒤편의 ‘치유의 숲길’이 개방됐다. 조선왕릉의 숲길은 자연 경관 보존이 뛰어나다. 연합뉴스

2019년 5월 경기도 파주 조리읍 파주삼릉 내 공릉 능침 뒤편의 ‘치유의 숲길’이 개방됐다. 조선왕릉의 숲길은 자연 경관 보존이 뛰어나다. 연합뉴스

군사 긴장과 개발 압력의 상관관계

그러나 서쪽 저지대와 철원평야에서는 다르다. 생태학적 핫스폿인 이곳에선 잠재적인 군사 공격 가능성에 많이 노출된 탓에 군대 주둔이 훨씬 더 많이 느껴질 뿐만 아니라 인간의 경제적 압박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가장 큰 위험은 대개 즐거운 사건과 함께 닥친다. 민간인통제구역 감소, 직접적인 국경지역의 긴장 완화와 군사기술적 해법에 대한 더 높은 신뢰는 실제로 이 지역의 자연에 대한 개발 압력이 크게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처에서 새로운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도로, 주택과 연금, 기업형 농업, 더 많은 인삼밭, 강 정비 프로젝트 등 이 모든 것은 이 지역의 생물 서식지를 극적으로 줄였다. 그 대부분은 생태관광이란 이름으로 벌어지는데, 한때 농촌 소득을 창출하고 생태와 발전을 조화시키는 현명한 방법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이 지역 생태계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생태 보호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은 진심이다. 대부분 사람은 DMZ 보호가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것이 ‘핵심지대’로서의 DMZ 자체에만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그 주변 완충지대에까지 미친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사람이 독수리, 흰꼬리수리, 두루미, 재두루미 같은 상징적인 조류종들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그것은 아름다운 한국의 유산과 미래를 보존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새들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많은 사람이 돈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보호만으로는 안 되고, 새를 먹이는 것뿐 아니라 새가 번성할 수 있는 적절하고 충분한 크기의 서식지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극소수다.

주변 완충지대 서식지도 중요해

독일 그린벨트의 사례를 보면 이는 지정 보호구역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계약 환경보호처럼 토지 소유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을 포함한 다양한 방식으로 처리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농촌 개발을 지배하는 이념은 경관의 ‘콘크리트화’다. 모든 도랑과 작은 하천은 파이프나 콘크리트 선체로 흘러 들어가면서 작은 양서류, 포유류, 어류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개구리가 이런 도랑에서 기어오르도록 돕는 ‘개구리 사다리’ 같은 재치 있는 해결책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농촌 개발에 대한 전반적인 재평가라면 훨씬 더 좋을 것이다. 환경조정(환경중재), 즉 농부와 토지 소유자, 군사, 행정, 환경 비정부기구(NGO)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공동 논의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조림 활동은 자연의 눈부신 복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것은 산림이 황폐화한 북한의 민둥산에도 희망이 되겠지만 강과 강바닥, 산울타리, 습지, 갈대밭, 휴경지, 논, 저지대 숲 등의 평야에서 똑같이 취약하거나 때로 훨씬 더 취약한 생태계 복원에 희망도 준다. 최근 한국 접경지역의 조류 조사를 하면서 나는 논 서식지가 오염되지 않았을 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조류가 다양하고 풍요롭다는 것에 다시 한번 경탄했다. 논밭이 고목에 둘러싸였고 주변에 도로가 없는 경기도 파주에 있는 왕릉인 장릉 가까이에 야생동물이 번성하고 있었다. 한국의 미래를 위한 한 가지 정책 과제는 서식지가 더 큰 규모로 악화할 때, 적어도 야생동물이 그런 지역에서 번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생물 다양성 유지에 보상을!

일부 NGO는 지속가능한 관리를 위해 토지를 취득하기 시작했지만, 이것이 유일한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오히려 정부와 토지 소유자는 생물다양성 유지를 목표로 하는 생태시스템 서비스가 적절히 보상받는 제도를 찾아서 토지 이용을 변경하려는 동기를 줄여야 한다. 그러면 서식지가 보존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한반도의 풍부한 생물다양성 보존으로 이어질 것이다.

코로나19 시대는 수많은 비극을 낳고 있지만,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 활동이 극적으로 제한되면서 생태계가 복원된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이는 분명 인간의 통행을 허락하지 않는 DMZ뿐만 아니라 그 주변 지역 생태환경 보존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될 것이다.

베른하르트 젤리거 Bernhard Seliger 한스자이델재단 한국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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