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하는 일

등록 2022-12-13 08:20 수정 2022-12-17 05:29
1442호 표지이미지

1442호 표지이미지

연말이 가까워오면 <한겨레21> 뉴스룸은 잠시 문학잡지 편집실 흉내를 낸다. ‘이 작품은 김초엽 소설이랑 비슷하네요’ ‘배경을 설명하려 드는 게 소설 같지 않음’ ‘이게 가장 SF스럽네요’. 손바닥문학상 예심 심사위원을 맡은 기자들이 모인 단체대화방이 내내 시끄러웠다. 특히 올해는 손바닥문학상 주제인 ‘지구’에 걸맞게, 상상력이 풍부한, 기자들의 허를 찌르는 작품이 많아 더 그랬다. 그런 응모작 123편 가운데 대상으로 뽑힌 홍수현(‘우주를 방랑하는 유서가 되어’), 가작으로 뽑힌 김수정(‘카스피주엽나무’), 전지은(‘짝수인간’)님께 축하와 응원을 보낸다.

12월6일 최종 당선작을 뽑는 결심을 앞두고, 한때 문학소녀였으나 지금은 바쁘다는 핑계로 한 달에 소설책 한 권 읽기도 버거워하는 나는, 한 달 넘게 책꽂이에 꽂혀만 있던 소설책 한 권을 펼쳤다. 사사로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 결심 심사위원인 김연수 작가가 최근 펴낸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였으니. 그런데 뜻밖에도 책갈피에 쓰여 있는 문장이, 지난 몇 주간 강마르고 괴로운 마음에 위로가 돼줬다. “달을 바라볼 때마다 지금 걷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달까지 걸어갈 수는 없겠지만, 달까지 걸어가는 사람인 양 걸어갈 수는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달까지 걸어가는 사람인 양 걷는 사람의 발은 달에 닿아 있습니다. 멈추지 마시길, 계속 걸어가시길.”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못지않은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하는 일’. 몇 주째 파묻혀 있던 여러 일을 생각했다. 지난호 표지이야기로 연재를 시작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미안해, 기억할게’는 <한겨레21> 잡지뿐만 아니라 <한겨레> 신문과 누리집에도 함께 실리고 있다. 유가족을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사진을 받아 일러스트를 의뢰하고, 기사를 고치고, 유가족들과 연락하기 위해 번호를 공개한 <한겨레21> 독자폰으로 걸려오는 전화(간혹 ‘내 귀에 도청장치’ 같은 내용의 전화까지 걸려온다)와 문자메시지에 응대하다보면 하루가 훌쩍 가버린다. 그래도 멈추지 말고, 꿋꿋하게 버티며 계속 걸어가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 까닭은 ‘우리가 하는 일’을 응원해주는 독자들 덕분이다.

‘좋은 기사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어서 문자 드려요. 10·29 참사 유가족분들께 큰 위로가 되실 것 같아요. 어제 고 임세원 교수님 4주기 추모콘서트를 다녀왔어요. 그 자리에서는 그 누구도 잊으라는 말도, 울지 말라는 말도 하지 않아요.’

‘미안해, 기억할게.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냥 묻혀가서는 안 됩니다. 힘드시겠지만 유족들 한은 풀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오.’

‘부천에 살고 있는 40대 아이 엄마입니다. 기사를 읽고 박가영씨가 제 20살 모습과 너무 닮아서 한참 울었습니다. 기사를 읽고 이 참사가 남의 일, 내 이웃의 일이 아닌 내 일이란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번호에도 계속 걸어간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김의현, 김옥사나 두 사람의 이야기를 실었다. 다음호에도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리고 12월10일 토요일, <한겨레21>의 새 누리집(http://h21.hani.co.kr)이 문을 연다. 온라인에서도 <한겨레21> 기사를 좀더 ‘잡지’처럼 시원시원하게 볼 수 있도록 <한겨레> 디지털국 서비스기획자·개발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몇 달간 공들여 준비했다. 새 누리집을 찾아와 ‘올해의 표지’ 투표에 참여해주신 독자 가운데 몇 분을 뽑아 선물도 드릴 예정이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1442호 표지이야기

전기 펑펑 쓰다가 한전 30조원 적자

https://url.kr/dcm36v

영등포 쪽방에는 닿지 않는 국가의 온기

https://url.kr/k7f6i2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