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만원 갖고 한 달 살아보셨으면….” 2001년 12월7일, 누군가의 집 앞을 찾아간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최옥란이 띄엄띄엄, 하지만 또박또박 말했다. 그의 동료가 누런 사각봉투 안에서 현금 28만6천원을 꺼내 집 앞을 지키는 경찰에게 보여줬다. 최옥란이 말한 ‘이 돈’, 28만6천원.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인 그가 매달 정부에서 받던 돈이다. 생계급여 26만3천원과 주거급여 2만3천원. 최옥란은 당시 김원길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이 돈을 ‘반납’하려 했지만, 문 앞에 봉투만 놓아둔 채 돌아섰다.
최옥란은 “정부가 28만원 가지고 살라는 것 때문에 몇 번이고 많은 고민과 죽음을 생각했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시행했다. 국가가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해주고, 생활에 필요한 일정한 돈(급여)을 지급해주는 제도였다. 처음으로 ‘시혜’가 아니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데서 출발한,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복지제도였다.
하지만 26만원은 “저소득 빈곤계층 단 한 명의 최저생계도 보장”하지 않을 만큼 적었다. 최옥란만 해도 매달 월세·관리비로 16만원, 거동이 자유롭지 않은 탓에 병원을 오가는 택시비만 12만원이 필요한 터였다. 생계급여를 받아봤자, 밥값도 남지 않았다. 최옥란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주장하며 서울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벌였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정말로 저같이 가난한 사람들의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로 거듭나기를 희망합니다. 벌써 두 명의 수급권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더 이상 자살을 생각하지 않도록 바뀌었으면 합니다.”(2001년 12월3일 농성 결의 발언) 하지만 최옥란은 끝내 절망을, 좌절을 견디지 못하고 2002년 3월 서른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등졌다.
최옥란은 ‘첫 사람’이었다. 국가가 주는 생계급여에 무조건 “고맙다” 하는 대신 법으로 정해진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최저생계비)’을 보장해달라고 권리를 요구했던 첫 사람. 20년이 흐른 지금에야, 더 많은 최옥란이 존재하게 됐다. 최저임금과 최저생계비가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기본권임을 알고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공감하는 다른 최옥란들이.
최근 6%대 물가상승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비싼 외식비 탓에 도시락을 싸오는 직장인들의 ‘런치플레이션’(점심·Lunch+물가상승·Inflation)을 여러 언론이 주목한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타격은 불평등하다. 20년 전 최옥란이 그랬듯이, 생계급여·주거급여를 받고서 밥값도 남지 않아 끼니를 거르거나, 가장 싼 반찬을 찾아 하루 3만 보를 걷는 이들도 있다.
빈곤사회연대는 기초생활수급 25가구를 대상으로 두 달간 ‘가계부’ 조사를 했다. 매일 수입과 지출, 식단과 식사 방법, 감정 상태 등을 수급자들이 직접 기록했다. 손고운 기자도 5~6월 이 가계부를 함께 들여다보고, 수급자 5명을 만났다.
가계부를 함께 들여다보고 있자니 마음이 쓰라렸다. 두 달 동안 하나도 사지 않은 집이 많았다. 14가구는 생선 등 수산물을 사지 않았다. 10가구는 의류·신발 구입을 안 했다. 9가구는 육류를, 과일을 한 번도 사지 않았다. 생계급여 월 58만원을 받아 버티려면 배고파도 참고, 아파도 참고, 더워도 참아야 한다. 매년 8월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생계급여의 기준선(기준중위소득의 30%)을 정한다. 치솟은 물가가 걱정이라면, 그만큼 깊어진 빈곤도 걱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에는 뉴스레터 <썸싱21> 홍보 대신 다른 홍보를 덧붙인다. 얼마 전 빈곤사회연대 등 사회단체 5곳이 서울 용산구 원효로 사무실이자 주택에서 쫓겨났다. 10년간 머물던 그곳 ‘아랫마을’에서는 홈리스 야학이 열렸고, 마당에는 길고양이 ‘정원’이가 놀러 오고, 부엌에서는 여럿이 함께 밥을 지어 먹곤 했다. 이들이 최옥란을 대신해 싸워왔기에 우리 사회의 빈곤도 한 뼘 정도는 줄었을 것이다. 아랫마을이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 가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한다. 후원은 소셜펀치(https://www.socialfunch.org/20220726)에서 할 수 있다.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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