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손된’ 독립운동가 이석영 선생(1855~1934, 이하 존칭 생략)의 직계 후손이 나타났다며, 취재해보겠다고 조일준 기자가 한 달 전에 이야기할 때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조선의 명문가이자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유명한 독립운동가 집안의 ‘여섯 형제’의 둘째로, 당대에 손꼽히는 재산가였던 이석영의 후손인데 왜 100년 가까이 알려지지 않았을까.
1910년 12월30일 새벽, 건영·석영·철영·회영·시영·호영 여섯 형제는 집안의 재산을 전부 처분한 거금을 챙겨 가족 40여 명과 함께 비밀리에 중국으로 망명하고 일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합니다. 둘째인 이석영이 나이 서른한 살 때인 1885년, 조선 최고 부자 중 한 사람이던 이유원 대감의 양자로 들어가 엄청난 가산을 물려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3500여 명의 독립군 지휘관과 전사들을 길러낸 신흥무관학교(1911~1920)를 세우고 운영하면서, “조선 갑부의 재산은 눈이 녹듯” 사라졌습니다. 두 아들 규준과 규서는 독립운동에 나섰으나 비명횡사했고, 이석영은 끼니를 걱정할 만큼 가난했습니다. 결국 중국 상하이에서 79살 무의탁 노인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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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 이석영 할아버지는 독립운동 과정에서 가장 많은 희생을 하신 분으로 알려졌다. 두 아들을 두었지만 모두 미스터리처럼 사라지고 절손됐다”고 이회영의 손자인 이종찬(85·전 국가정보원장)은 말합니다. 정부가 이석영(1991년 애국장)과 장남 규준(2008년 애족장)에게 서훈한 독립유공자 훈장도 이종찬이 대리 수훈했습니다.
지금껏 알려진 것과 달리 사망한 규준은 온숙·숙온·우숙 세 딸을 둔 것으로 <한겨레21>은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세 딸은 독립운동에 전념하는 아버지(규준)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자랐답니다. 게다가 아버지는 일찍 사망하고 어머니(한평우)는 재가했습니다. 남겨진 세 딸은 “고아나 다름없는 비참한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역사에서 잊혔습니다.
“이석영이 손녀 셋을 두었다”는 사실을 <한겨레21>에 알려온 사람은 숙온의 딸 김용애(86)입니다. 이석영의 증손녀인 그는 2021년 2월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독립운동가 이석영 선생 순국 87주기 추모식’이 직계 후손 없이 열렸다는 소식을 언론 보도로 알고는 “그냥 조용히 묻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라고 굳게 결심했습니다. 첫째 온숙의 딸 최광희(82)와 함께 ‘뿌리 찾기’에 적극 나섰습니다. 어머니들의 제적(옛 호적)등본을 떼고 집안 족보도 뒤졌습니다. 딸들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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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겨레21>이 만난 이종찬은 ‘6촌 누나’ 온숙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온숙과 10년 넘게 가까이 지내다가 1950년 6·25전쟁을 기점으로 관계가 단절됐다고 합니다. 다만 온숙에게 두 여동생이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몰랐답니다. 다행히 끊어진 기억을 이어줄 사진 자료가 남아 있습니다. 도산 안창호가 주례를 선 온숙의 결혼식 사진(1929년)과, 온숙·숙온·우숙 세 자매와 어머니가 함께 찍은 사진(1978년)입니다. 이 사진을 본 이종찬은 “어리둥절하지만 일단 후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겨레21>에 알려왔습니다.
‘독립유공자 뿌리 찾기’라는 험난한 여정에 “뜻밖에 다시 희망이 찾아”왔다고 김용애는 기뻐합니다. 너무나 늦었지만 이제라도 딸들의 희망이 열매 맺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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