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0년 전 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2011년 2월, 중동 이슬람 국가들에선 자유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중의 시위가 거셌습니다. 튀니지에서 촉발된 민주화 시위는 순식간에 이집트, 알제리, 리비아, 모로코, 시리아, 예멘,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바레인까지 주변 아랍국가로 들불처럼 번져나갔습니다. 당시 신문 국제부에 있던 저는 이집트로 급파됐습니다. 현지에선 시위 진압에 나선 내무군의 무자비한 총격과 테러 공격으로 하루에도 수십 명씩 목숨을 잃던 상황이었습니다. 세계사의 뜨거운 현장을 직접 보고 기사를 송고한다는 사명감과 뿌듯함 뒤로, 약간의 불안감도 없지 않았습니다.
10년 전 ‘아랍의 봄’을 떠올리는 건 지금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군부 학살과 그에 굴하지 않는 민주화운동을 지켜보고 있어서입니다. <한겨레21>은 지난호 표지이야기로 미얀마 상황에 주목했습니다.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2021년 2월1일부터 한국의 6·10 민주화운동 34주년을 맞은 6월10일까지 130일의 저항 기록을 미얀마 청년의 일기 형식으로 담고, 미얀마 군부가 1962년 첫 쿠데타 이후 국가권력을 사유화해온 과정을 짚었습니다. 향후 미얀마 상황의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도 실었습니다. 그와 별개로 <한겨레21>은 4월부터 매주 한국 시민의 미얀마 연대 편지를 싣고 있습니다.
미얀마 현대사는 한국의 경험과 많이 닮았습니다. 오랜 식민 통치와 독립투쟁, 군부의 장기 독재와 끈질긴 저항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얀마 시민이 한국에서 희망을 찾고, 한국 시민이 미얀마 시민에게 깊은 공감을 갖는 이유일 겁니다. 지난호 표지이야기 기사들에도 지지와 응원의 댓글이 많이 달렸습니다.
미얀마 시민은 단순히 쿠데타 이전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진정하고 굳건한 민주주의 체제 건설을 염원합니다. 군부독재 또는 대리세력을 내세운 가짜 민주주의 복귀는 끔찍한 악몽입니다. 그들은 지금의 투쟁을 ‘미얀마 봄의 혁명’이라고 부르며 승리를 다짐합니다. “아예더봉(혁명), 아웅야미(승리한다)!”
10년 전 이집트 혁명의 진앙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으로 돌아가봅니다. 독재자 무바라크가 물러나기 전이라 상황은 엄중했습니다. 열한살 딸과 함께 광장 시위에 나온 한 30대 여성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한국의 6·10 항쟁 경험을 들려주니 귀를 쫑긋 세우더군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이집트 국민은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길 바라느냐”고 물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에 깜짝 놀랐습니다. 간명하고 강렬한 답변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정책을 바꾸고 내각을 개편하는 건 아마추어다.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사고를 한다. 우리는 새 대통령이 아니라 새로운 어젠다를 원한다!”
미얀마의 미래인 MZ세대가, 나아가 모든 미얀마 시민이 혁명적 민주화의 꿈을 꼭 이뤘으면 좋겠습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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