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에 입사하고 몇 년 동안 토요일 하루만 쉬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신문을 만들어야 하니까 일요일에는 출근해야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늘 없고, 결국 막내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2004년 주5일제가 도입됐지만 현장의 변화는 느렸습니다. 2010년 이직하고 나서야 주5일제를 체감했습니다. 하루 쉰 토요일 밤, 다음날도 쉰다는 게 얼마나 설레던지요. 주 6일 때는 쉬는 날 이불 밖 외출이 없었는데, 주 5일이 되니까 하는 게 많아졌습니다. 산책하고, 영화 보고, 때론 1박2일 여행도 했습니다.
2020년 편집장이 되니까 주 4.5일 노동이 가능하더군요. 목요일에 기사 마감을 끝내고 금요일에는 회의만 두서너 시간 합니다. 주 40시간이 훌쩍 넘는 노동시간 탓에 나흘은 고되지만 사흘은 느긋해졌습니다.
장시간 노동의 대명사인 한국에서는 주 52시간 노동조차 아직 정착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삶과 일의 균형에 대한 욕구는 커집니다. 특히 코로나19 영향으로 재택근무와 유연근무 등이 늘어나면서 주4일제에 대한 관심이 늘었습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후보로 나선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4일제, 주4.5일제를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논의에 속도가 붙었습니다.
이번호에선 주 4일 노동을 실행하는 기업 두 곳을 찾아갔습니다. 화장품 제조회사 에네스티와 종합교육기업 에듀윌입니다. 충북 충주에 있는 에네스티는 3년간의 시범운영을 거쳐 2013년부터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하루 9시간씩 주 36시간 일합니다. 에듀윌은 2019년 ‘드림데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주말을 제외하고 하루 더 쉬는 주 32시간을 시행합니다. 두 기업 모두 임금 삭감은 없었습니다. 그곳 직원들에게 주 4일 노동으로 달라진 일상을 물었습니다.
“가족이 우리 남편, 우리 아빠가 좋은 회사에 다닌다고 자부심을 느낀다.”(최형산씨·47살)
“금요일부터 사흘간은 육아와 가사노동을 아내보다 많이 하려고 한다.”(김익수씨·32살)
“직장인 밴드 활동을 하는데 평일엔 연습실 대여가 쉽고 저렴하다.”(양준영씨·28살)
“매주 연차 쓰는 기분이다. 7개월 된 아이를 돌보고 은행 업무를 보거나 병원에 간다.”(전아라씨·27살)
주4일제가 가져다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에 그들은 “월급을 더 준대도 다시는 주5일제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주 3일 가족과 함께 휴식하는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다”(장범석씨·39살)고 말합니다.
게다가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산업재해가 줄고 운동시간이 늘어나는 등 부가적 효과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노동생산성이 낮아져 회사 경영이 어려워진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실제 정책 연구 결과는 그 반대입니다. 2004년 법정 노동시간을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할 때 노동시간이 감소했더라도 전체 노동생산성은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하는 시간에 집중도가 올라간 덕분입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독일(주 40시간→주 36시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장시간 노동을 포기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보편적 복지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녀 양육과 부모 돌봄은 물론 자신의 노후까지 현재의 임금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4일제 같은 노동시간 단축은 교육비와 노후 생계비를 혁신적으로 경감시키는 사회보장 시스템 개편이 전제돼야 한다.”(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 교수) 시간과 돈, 둘 다 충족하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요.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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