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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토크] 가덕도의 낯선 생명체

등록 2021-04-23 17:44 수정 2021-04-24 01:47

낯선 생명체와 조우할 때 ‘완벽한 타인’이 된 기분을 느낍니다. 2019년 백령도 앞바다에서 점박이물범을, 타이 중부 카오야이 국립공원에서 야생코끼리를 처음 봤을 때 그랬습니다. ‘여긴 어디인가, 난 누구인가.’ 나 자신조차 낯설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제1359호 표지이야기 ‘가덕도에 상괭이가 산다’를 취재하며 국내 토종 돌고래인 상괭이를 처음 봤습니다. 부산 가덕도 앞바다에서 어렵지 않게 여러 마리를 볼 수 있었지요. 늘 웃는 표정이라는데, 고개를 잘 들지 않아 얼굴은 제대로 못 봤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이라는군요. 높이 점프하지도 않는답니다. 다른 돌고래와 달리 지느러미 없는 매끈한 등만 실컷 봤습니다. 오히려 호기심은 배가됐죠.

가덕도 현장 취재는 원초적인 문제의식에서 시작했습니다. ‘가덕도 잘 모르지? 일단 가서 보자.’

여야가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가덕도에 신공항을 짓기로 못 박은 특별법을 통과시켰습니다. 가덕도가 공항 짓기 알맞은 곳인지 검증되지 않은 채 말이죠. 심지어 신속하고 원활한 건설을 위해서라면 예비타당성조사도 면제할 수 있도록 특례를 뒀습니다. 정치권은 중간 단계를 건너뛰고 너무 멀리 가버렸지만, 저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묻기로 했죠. 가덕도는 어떤 곳입니까? 가덕도에 사는 상괭이와 마을 주민, 100년 숲, 역사 유적 이야기를 전한 이유입니다.

우연한 발견이 기사로 이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4월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21> 뉴스룸에서 제1359호 표지이야기 기사 마감을 앞두고 추가 취재를 했습니다. 먼저 부산시 누리집에서 ‘제2차 부산자연환경조사 서부산권역 최종보고서’ 파일을 내려받아 읽었죠. 부산시가 가덕도를 포함한 부산 서쪽 지역 자연생태계를 조사해 정리한 2016년 5월 보고서입니다. 부산시는 10년마다 지역 자연환경조사 보고서를 펴내는데, 이 보고서가 최신판입니다.

상괭이도 상괭이지만 가덕도 산림 식생도 흥미롭고 생소하더군요. 해당 조사 연구진으로 참여한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가덕도 국수봉 일대 식생에 관해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부산시가 누리집에 등록한 최종보고서 피디에프(PDF) 파일은 홍 교수가 가진 최종보고서 단행본과 내용이 일부 다르더군요. 두 보고서는 내용과 형식이 거의 동일한데, 공교롭게도 단행본에서 가덕도 자연생태계 가치를 높게 평가한 부분이 파일에선 교묘하게 수정·삭제돼 있었습니다.

관련 기관과 관계자 등을 취재해 이번호(제1360호) ‘보도 그 뒤’ 꼭지에 실었습니다. 취재 이후 부산시는 기존 보고서 파일을 누리집에서 삭제하고 최종보고서와 동일한 내용의 보고서 파일을 새로 올렸습니다.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누가 임의로 최종보고서를 건드렸을까? 지시한 사람은 누구일까? 왜 하필 가덕도였을까?’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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