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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속고’는 계속되나

등록 2021-04-17 02:35 수정 2021-04-19 10:58
1359호 표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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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강서구 가덕도를 처음 방문한 것은 2016년 12월이었습니다.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만민공동회’ 무대에 올라 “대통령한테도 속고, 정치인한테도 속고, 다 속았심더”라고 외쳐 ‘속고 아줌마’로 유명해진 김경덕씨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가덕도 토박이인 그는 마을 부녀회장으로 이웃들과 피조개 양식장을 운영하며 살다가 부산신항 개발로 토지가 수용돼 이주해야 했습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섬사람들은 집을 잃고 쫓겨나듯 마을을 떠나야 했지만, 투기 목적으로 땅을 사들인 외지인은 보상금을 살뜰히 챙겼습니다. “나라가 참 미웠심더. 우리나라가 왜 서민들을 안 지켜주는지. 믿고 있던 나라에 속았지예.” 지역의 한 산업단지에서 6개월 계약직으로 청소일을 하는 그는, 옛 이웃을, 그 양식장을 몹시 그리워했습니다. “먹고살 걱정 없고 좋았지예, 참 좋았어예.”

이번호(제1359호) 표지이야기를 읽으며 김경덕씨를 떠올렸습니다. 김규원·김선식 기자가 2021년 4월7~9일 신공항 건설이 예정된 가덕도를 찾아가 그 산과 바다, 마을과 유적지, 그리고 대대손손 고기잡이로 생업을 이어온 대항마을 주민들을 만났는데, 5년 전 김경덕씨가 겪은 그 일이 되풀이되나봅니다. “여기는 농사짓는 이가 없다. 다 어민이다. 평생 고기만 잡던 사람들이 다른 데 나가서 뭘 하겠나.”(김차정씨·87) “여기서는 낡아도 집이 있는데, 대토를 받으면 새로 집을 지어야 한다. 노인들이 무슨 수로 집을 짓나.”(한상태씨·79) “바다 일도 하고 채소도 길러 먹으면서 70년 넘게 잘 살았다. 이제 쫓겨나면 어디 가야 할지 모르겠다.”(허순옥씨·79) “최근 외지인이 많이 들어오고 집도 많이 짓는다. 살러 온 사람도 있겠지만 투기꾼이 많은 것 같다.”(장영식 사진작가)

그리고, 우리는 ‘한국의 인어’라 불리는 작은 돌고래 상괭이를 봤습니다. 전세계 멸종위기종인 상괭이는 해산물이 풍부한, 해양생태도 1등급(보전 가치가 가장 높음)인 가덕도 앞바다에서 삽니다. 4월9일 대항항에서 출발해 가덕도 등대가 있는 남쪽으로 10분 남짓 달렸을 때, 수면 위에 반짝이는 둥근 물체가 나타났습니다. 등허리만 내놓고 유영하는 상괭이였습니다. 머리를 물 위로 들어 올려 그 특유의 웃는 얼굴을 볼 기회도 있었지만 순식간에 놓쳤습니다. 하지만 지느러미가 없어 매끈한, 사람 크기와 비슷한 몸통은 여러 차례 봤습니다.

가덕도 신공항이 건설되면 지역 주민들처럼 상괭이의 생존도 위협받습니다. “음파로 사물 방향을 탐지하고 의사소통하기에 공사 소음과 진동이 상괭이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다. 바다가 매립되면 해류가 바뀌어 먹이 어류의 서식·이동 경로가 흐트러지고 최상위 포식자인 상괭이도 줄어들 우려가 있다. 생태계에 연쇄적인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류종성 안양대 해양바이오시스템공학과 교수)

4·7 재보궐선거에서 패했지만 여당은 가덕도 신공항을 그대로 추진한다는 입장입니다. “특별법은 이미 통과됐다. 선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부산·경남·울산의 균형발전을 위한 일이었다.”(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민의힘 박형준 부산시장도 환영입니다. “가덕도 신공항을 물류·허브 공항으로 건설하면 파급효과가 엄청나게 크다.” 사람과 동물이 터전을 잃게 할 토건사업으로 얻을 발전은, 효과는 무엇일까요.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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