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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토크] 무궁화장이 담지 못한 전태일 정신

등록 2020-11-14 01:31 수정 2020-11-14 02:53

전태일 모친이란 호칭보다 ‘1천만 노동자의 어머니’란 이름이 더 자연스러운 이소선 어머니를 처음 뵌 건 신문에서 전태일 열사 40주기 기획을 준비하던 2010년 10월22일이었습니다. 서울 창신동 어느 골목 길가에 붙은 단독주택의 자그마한 방에 앉은 어머니는 연신 담배를 입에 문 채 “담배 피우는 사진 찍지 마라. 혹시 찍혀도 신문에는 내지 마라. 약속하라”고 다그쳤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고혈압과 당뇨를 앓던 어머니는 6개월 전 집에서 실신해 가족의 걱정을 사던 터였습니다.

“노동자를 물건 취급해서 비정규직으로 몰아넣는” 세상을 한탄하던 어머니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마음을 합해 사흘만 총파업을 벌여도 이 나라가 노동자를 이렇게 탄압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이명박 정부 때였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진 노동자들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동시에 이런 노동자를 하나로 묶어 세우지 못하는 노동운동 세력의 무능함을 향한 분노가 느껴졌습니다.

꼭 10년이 지난 2020년 10월26일,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 있는 전태일 열사 묘역을 참배했습니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저를 비롯해 언론사 기자, 사진가, 노동활동가가 참여해 만든 프로젝트 신문 <전태일50>의 홍세화 편집위원장과 함께 간 자리였습니다. 열사의 동상 가슴팍엔 어느 노동자가 걸어주고 간 듯 ‘생존권 사수’라고 적힌 띠가 둘려 있었습니다. 10여m 뒤로 이소선 어머니의 묘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인터뷰한 지 1년 뒤인 2011년 9월 소천하셨습니다. 열사가 분신하던 날 밤, 노동자와 학생의 단결을 꼭 이뤄달라던 아들 태일의 꺼져가는 목소리에 “내 몸이 가루가 돼도 네가 부탁한 걸 하겠다”고 절규하던 어머니는 그렇게 아들 곁에 잠들어 계셨습니다.

이날 일행은 전태일 열사 묘역 아래,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업재해로 숨진 청년노동자 김용균씨 묘소도 참배했습니다. 이날 참배를 마친 홍세화 편집위원장이 쓴 글과 지척에 누워 있는 이소선-전태일 두 모자의 가상 대화(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이소선 어머니에서 시작해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에 이르기까지의 투쟁을 정리한 글(송경동 작가) 등으로 제1337호 표지이야기 ‘그대 전태일, 나의 나’를 꾸며봤습니다. <전태일50>에 실린 글을 <한겨레21> 지면 구성에 맞게 분량만 조절했습니다. 외부 매체와 적극적으로 ‘콜라보’(협업)하겠다는 게 정은주 편집장의 방침입니다.

이 글을 쓰는 11월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전태일 열사한테 국민훈장 1등급인 무궁화장을 줬습니다. 노동계 인사론 처음이랍니다. 좋은 일입니다. 다만 ‘전태일 정신 계승을 훈장 수여로 땡처리하려 말고, 노동 분야 공약 이행과 전태일 3법 입법으로 보이라’는 노동계의 매서운 비판에도 귀 기울이길 바랍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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