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생 형제만 있던 한 빌라에서 불이 났습니다. 형제는 “살려달라”고 ‘119’에 신고했습니다. 곧바로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불길을 잡았지만 형제는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습니다(9월17일 현재). 화재의 원인은 형제가 끓이려던 라면이었습니다.
기사를 읽고는 불이 난 시간부터 찾았습니다. 2020년 9월14일 월요일 오전 11시10분께. 평소라면 형제는 학교에 있었을 겁니다. 조금 뒤에 친구들과 급식 시간을 기다리면서요. 기초생활수급 가정의 형제에게는 특별히 맛있고 영양가 있는 급식이었을 테니까요. 그러나 코로나19로 전면 ‘원격수업’이 시행 중이었기에, 학교에 갈 수 없었기에, 스스로 점심을 챙겨야 했기에 아이들은 가스레인지를 켰을 겁니다.
기사 댓글에 달린 시민들의 마음과 저 역시 같습니다. 안타깝고 미안하고, 그리고 기도합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미안한 마음이 가장 큽니다. 며칠 전 썼던 제1330호 표지이야기 ‘두 번째 집이 사라졌다’ 기사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2020년 들어 코로나19로 열흘에서 두 달 남짓을 제외하고는, 집에서 혼자 배우고 먹고 놀고 운동하는 학생들의 하루를 그린 기사였습니다. 최대한 많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와 대화를 나눈 뒤 학습 격차 문제 외에 우울증·공황장애, 신체발달 저하, 일상 파괴, 집밥 불평등 등의 문제를 두루 다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형제에게 닥칠 불행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학생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요. 솔직히 학교 폐쇄로 다른 나라 아이들이 겪는 가정폭력·성매매·조혼·강제노동 같은 문제(표지이야기 ‘외국에선 결석이 바이러스보다 해롭다’)도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다르게 보입니다.
학교가 부분 폐쇄된 지 6개월 만에 우리가 예상치 못한 일이 이렇게나 많이 일어난다는 건 학교 역할이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다는 거겠지요. 어쩌면 어른들만 몰랐을 뿐, 아이들은 다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기사에 담진 못했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다시 가고 싶어 하는 이유만 들어봐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미술을 가장 좋아하는 중2 박노아(가명)는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이 그립다고 했습니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예술고1 박채희(가명)는 “영화를 전공하는 친구들과 다 같이 만나 장비로 촬영도 하고, 영화제에 출품할 작품을 찍는 2학년 선배들을 돕는 스태프도 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초4 석지윤(가명)은 “신호등(녹색등)이 거의 꺼지기 직전에 횡단보도를 뛰어도 끄떡없는 체력”을 다시 기르고 싶다고 했습니다.
드디어 9월21일이면 노아는 미술, 채희는 영화 제작, 지윤이는 체육 시간을 되찾게 됩니다. 수도권 사회적 거리 두기가 2단계로 완화된 덕분입니다. 비록 일주일에 하루, 격주에 일주일, 3주에 일주일로 ‘띄엄띄엄’ 등교하겠지만요.
물론 아이들이 좋아하는 활동을 제대로 하고, 미래를 꿈꾸고, 뛰어놀려면 이제 ‘코로나 이전의 학교’로는 부족합니다. 학생들도 충분히 자고 취미를 즐기며 배움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걸 이번에 알아버렸거든요. 학교로 돌아가고 싶었던 학생들을 후회하게 하는 학교가 되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1330호 표지이야기-두번째 집, 학교가 사라졌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2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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