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반지하의 에세이 ‘부치의 자궁’이 미국 온라인 문학 매거진 ‘오핑’에 번역 게재됐다. 오핑 갈무리
작가 이반지하의 에세이 ‘부치의 자궁’이 ‘부치 팰리스 포 더 선’(Butch Palace for the Son·아들을 위한 부치궁)이라는 제목을 달고 그의 글 중 처음 영어로 번역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중년에 접어든 또래 부치(이른바 ‘남성적’으로 여겨지는 성별 표현을 하는 레즈비언)들과 그들의 자궁에 대한 이 에세이는 어디에 있든 “단연코 가장 남자다운” 열 많은 부치 ‘성 열’과 “젠더 트러블 특유의 내적 꽁함이 보이지 않”는, 어물쩍 부치 ‘성 확정’의 인터뷰를 담았다.
작업하며 “꽤나 머리 쥐어뜯었다”는 문호영 번역가의 고충을 상상하며, 이 기막히게 재미있는 글을 읽을 영어권 독자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당장 듣고 싶어졌다. 에세이는 이렇게 시작한다. “레즈비언 중에서 ‘부치’는 남자고, ‘펨’은 여자다. 하지만 부치의 중심부에도 아들을 낳기 위한 자리가 있다.” ‘아들을 낳기 위한 자리’에 대한 영어 번역은 다음과 같다. “the uterus—the 자궁(子宮), that is, a ‘palace for the son’”
예전에 ‘엄마,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어’라는 책을 번역하며 자궁을 뜻하는 스페인어 ‘útero’를 포궁으로 옮겼다. 한자 아들 자(子)가 아닌 세포 포(胞)를 사용함으로써, 남성형이 여성형을 포괄하는 방식으로 정착되는 언어에 반대하고자 했다. 책의 장르가 페미니즘 에세이였고, 해당 부분에서 작가가 어린 시절 백과사전에서 여성의 신체 부위, 그중에서도 생식기에 대한 설명을 찾아 헤매는 내용이었기에 새로운 번역어를 시도하며 생길 덜컹거림을 감수해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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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황에 정답인 번역은 없다. 이렇게 다른 단어로 바꿔 부르지 않아도, 이반지하의 글 역시 ‘자궁’이라는 기관과 단어를 둘러싼 많은 불화를 전달한다. 영어 번역에서는 한국어 단어 ‘자궁’이 한자와 함께 병치되고 단어의 어원이 드러난다. 영어로 옮겨진 ‘궁 palace’을 보는 순간, 시대착오적이고 폐쇄적인 궁의 이미지와 부치의 몸속에서 자궁이 빚어내는 부조리함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느낌이 든다.

‘부치의 자궁’이 실린 책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이야기장수 펴냄)는 한국 퀴어 페미니스트 커뮤니티의 슈퍼스타이자 예술가인 이반지하가 알바를 하고 복싱을 배우며 운전면허를 따고 살아가고 살아내는, “개망신과 수치심의 연속”인 온갖 일상의 장면을 그려낸다. “익숙한 정상 사회”에 깃든 차별과 혐오의 언어를 반죽해 가지고 노는 그의 글은 독자를 웃기고 또 울린다. 2023년 나온 이 책에는 내란수괴가 돼버린 대통령에게 보내는 당선 축하 글도 실려 있다. “일을 정도껏 벌이셔야 예술 입장에서도 치유라든가 위로 뭐 그런 것을 할 수 있다”는 눈물 나는 당부의 말씀.
나라 걱정에 근심이 마를 날 없는 요즈음, 책이 손에 잡히지 않고 시국이 정신을 집어삼키는 이런 때 다시 집어든 이반지하의 책 덕분에 나는 함께 웃는 사람들을, 이 이야기들이 있어서 죽지 않고 늙어낼 사람들을 상상한다. 이반지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책이 세상을 떠다니는 이들을 부드럽고 안정적으로 눌러주는 ‘압’이 되기를. “평생 갖고 싶었고 그리워했던 그 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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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슬기 번역가
*번역이라는 집요하고 내밀한 읽기. 번역가와 함께 책을 읽어갑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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