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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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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집, 학교가 사라졌다

코로나 시대, 혼자 배우고 먹고 놀고 운동하는 학생들의 하루
등록 2020-09-12 07:25 수정 2020-09-19 01:28
원격수업을 듣던 한 초등학생이 노트북에 머리를 대고 있다. 김규원 기자

원격수업을 듣던 한 초등학생이 노트북에 머리를 대고 있다. 김규원 기자



2020년 9월, 여름방학을 마친 학생들이 다시 학교에 갑니다. 교실과 운동장과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는 학교는 아닙니다. 5인치 휴대전화, 10인치 태블릿PC, 13인치 노트북 속 학교입니다. 1학기에 이어 2학기에도 상당수 학생은 아침마다 학교에 ‘등교’하는 대신 ‘접속’하고 있습니다.

등교 통제는 코로나19 감염 위험에서 학생들의 건강과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조처입니다. 서울 사랑제일교회를 고리로 한 감염 확산으로 8월22일 전국 ‘사회적 거리 두기’가 2단계로 강화되자, 교육부는 사흘 뒤 수도권의 모든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의 전면 ‘원격수업’을 결정했습니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등교하는 학생도 3분의 1(고등학교는 3분의 2)로 제한했습니다. 이런 강력한 ‘교육 분야 2단계’ 조처가 끝나는 시점은 9월11일에서 9월20일로 늦춰졌습니다.

학교 폐쇄, 온라인 개학, 간헐적인 등교, 또다시 학교 폐쇄. 2020년 들어 학생들이 학교에 간 날은 짧게는 열흘, 길게는 두 달 남짓. 남은 3개월 동안 며칠을 더 학교에 갈 수 있을지도 불투명합니다. 학생에게 너무나 당연한 ‘등교-수업-하교’의 일상이 사라지고 ‘교사-나-친구’의 관계가 끊어진 ‘위기’ 상황이 기약 없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신나민 동국대 교수(교육학)의 설명을 들으면 지금 학생들이 감당할 고민과 불안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냅니다. 학생에게 학교는 정주공간이자 생활공간인 거예요. 한마디로 학생에게는 두 개의 집이 있는 거죠. 그런데 두 개의 집 중 하나의 집이 없어진 거예요. 그것도 경제적 격차에 따라 환경 차이가 크게 나는 가정이 아니라, 동일한 공간 환경을 제공하던 ‘평등할 수 있는 집’이 없어진 겁니다.”

이제 하나 남은 집에서 혼자 배우고 먹고 놀고 운동하는 학생들의 하루를 <한겨레21>이 들여다봅니다. 4월9일 시작된 원격수업이 가져온 변화를 초·중·고교 학생 9명, 학부모 7명, 교사 10명에게 9월1~8일 전화로 물었습니다. 이들이 대답한 내용을 모아 ‘원격수업의 하루’를 재구성했습니다.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파란 이름은 학생, 빨간 이름은 학부모, 초록 이름은 교사입니다._편집자주
<조회 시간>

오전 10시. 초4 석지윤(서울)은 화상회의 플랫폼 웨벡스(Webex)에 접속했다. 선생님은 학생 28명의 출석을 확인하고, 학생들은 서로 인사를 나눈다. 조회에 맞춰 일어난 시간은 오전 9시. 학교에 갈 때보다 40분 더 잤다. 가끔은 너무 푹 자서 조회 시간에 늦을 때도 있다.

예술고1 박채희(서울)는 아침 7시에 가뿐히 일어나 ‘8시 실시간 조회’로 하루를 열었다. 1교시에 맞춰 집이 있는 서울에서 학교가 있는 경기도까지 가는 날엔 새벽 5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그래서 원격수업을 하는 날에는 “체력 소모가 덜하고” 컨디션이 좋다.

원격수업으로 학생들의 아침은 여유로워졌다. 등교를 준비하고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없으니 충분히 잔다. 조회 시간이 곧 ‘기상 시간’인 학생들도 있다. 휴대전화 기상 알람을 조회 시간 10분 전에 맞추거나, 아예 교사가 깨워야 일어나기도 한다.

느긋한 학생들을 화면 앞에 불러 앉히느라 교사들은 난리법석이다. 국어 교사 김서인(경기)씨가 있는 중학교 교무실은 아침이면 “콜센터”가 된다. 담임교사들은 조회에 나타나지 않는 학생에게 전화나 채팅으로 말을 걸고, 그마저도 연락이 안 닿으면 학부모에게 전화한다. 그나마 교사나 학생 모두 1학기에 이(e)학습터, 온라인클래스 같은 원격수업 플랫폼에 접속하고 카카오톡, 밴드, 웨벡스·줌(Zoom) 같은 화상회의 플랫폼을 활용해 출석을 확인하는 과정에 적응한 덕분에 요즘에는 10분이면 조회가 끝난다. 처음엔 30분, 40분씩 걸리던 일이었다.

2020년 5월 서울 공립형 대안학교 오디세이학교에서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2020년 5월 서울 공립형 대안학교 오디세이학교에서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오전 수업 시간>

고1 전다은(서울)은 아침 8시20분 조회를 한 뒤, 오후 2시까지 온라인클래스에 올라온 20~30분짜리 동영상 7개를 “빡세게” 몰아 봤다. 놀고 싶거나 학원 숙제를 해야 할 때는 “쉬엄쉬엄 4시까지” 듣기도 한다. 밀린 동영상은 일주일 안에만 보면 된다. 웨벡스, 줌을 이용해 교사가 직접 학생에게 강의하는 ‘실시간 쌍방향 수업’이 아니라, 교사가 사전에 제작한 영상이나 EBS(교육방송) 강의를 학생들이 시청하고 교사와 피드백을 주고받는 ‘콘텐츠 활용 중심 수업’(동영상 수업)을 듣고 있어서다.

동영상을 틀었다고 수업을 듣는 건 아니다. 오늘도 수학 동영상은 그냥 흘려보냈다. 어차피 학원에서 수학을 배우니, 차라리 그 시간에 학원 숙제를 푼다. 교사·친구들과 아무런 상호작용 없이 진도만 죽 빼는 동영상에는 좀처럼 집중이 안 되는데, 어려운 수학은 더더욱 그렇다.

특목고2 김민찬(서울)은 조회에 출석만 하고 동영상을 틀어놓은 채 잠을 잤다. 원격수업을 한 뒤부터 “오후 4~5시에 일어나 공부하고 아침 8시에 자는 생활”이 반복되고 있다. 공부가 잘돼서다. 어쩌다 낮에 학교 온라인수업을 듣는 날이면 ‘2배속’ ‘음소거’를 한 채 다른 디지털 기기로 “더 알찬 ‘일타’(1등 스타) 강사의 인강(인터넷 강의)”을 본다.

실시간 수업은 그마나 낫다. 중2 김하영(경기)은 2학기에 처음 시작한 실시간 수업을 조금 더 집중해 들었다. 아무래도 일방적인 강의 위주의 동영상 수업보다는 교사·친구들과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어 ‘줌’ 수업이 재미있다. 그래도 대면 수업만큼의 긴장감은 없다. 눈으로는 노트북 화면 속 교사를 보지만 손으로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린다. 어차피 실시간 수업을 놓쳐도 시간 날 때 동영상을 다시 볼 수 있으니까.

쌍둥이인 중2 서빈·서진(서울)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수업에 집중할 수 없다. 둘 다 ‘느린학습자’(경계선 지능·지능지수 70~85)라 강의·과제·공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4~5월에는 엄마가 자정까지 수업도 함께 들어주고 과제도 대신 해줬다. 그러나 엄마가 투병 생활을 시작하며 손을 놓은 뒤에는 쌍둥이들만 멍하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출석을 인정받으려고 7교시마다 간단한 과제를 제출해야 할 때는 “어려워서 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해서 쓴다. 쌍둥이는 특수교육 대상자지만 학교의 별도 학습·상담 지원은 없다.

지루해하거나 아예 딴짓하는 학생들의 시선을 붙들려 교사들도 애쓴다. 실시간 강의 영상을 일부러 바로 삭제하거나 학생이 수업을 들으며 쓴 필기를 사진으로 찍어 제출하도록 한다. 수업마다 간단한 과제를 내기도 한다. 그래도 학습에 대한 의지나 관심이 약하거나 학습 시간과 진도를 관리해줄 부모가 곁에 없는 학생들은 쉽게 수업에서 이탈한다.

중학교 교사 김철기(서울)씨의 역사 수업 시간에 착실히 수업을 따라오는 학생은 한 반 인원 20명 중 5명 정도다. 늦게라도 영상을 챙겨 보고 과제를 내는 학생을 포함하면 15명 정도가 수업을 듣는 시늉이라도 하지만 나머지 5명은 끝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얼굴을 보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파악도 하고 ‘좀 하라’고 타이르기도 할 텐데, 지금은 담임들이 전화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게” 전부다.

<점심시간>
고1 안주선(서울)은 엄마가 미리 양념에 재워놓은 삼겹살을 구워 재택근무를 하는 아빠와 함께 밥을 먹었다. 매일 끼니를 챙겨두고 일을 나가는 엄마 덕분에 학교 급식보다 맛있는 식사를 한다. 중1 강채아(경기)는 언니와 함께 떡볶이와 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다. 요리가 취미인 채아가 음식을 하면 언니는 설거지를 한다. 시끄러운 급식실에서 정신없이 급식을 먹을 때보다, 내가 요리한 음식을 여유롭게 먹을 수 있는 점심시간이 행복하다.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초3, 초6, 중1의 세 남매 김은서·진서·민서(서울)는 지역아동센터에서 배달해준 도시락을 먹었다.

똑같은 급식을 먹던 학생들은 이제 집밥을 먹는다. 집의 밥은 집의 형편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학교에서 급식을 못 먹게 된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 등의 학생들은 교육부로부터 ‘꿈나무카드’(아동급식카드) 충전이나 도시락 배달을 통해 중식 지원(한 끼 6천원)을 받는다. 그러나 중식 지원에서 배제되는 사각지대에 있거나 부모의 보살핌이 부족해 학교에 못 가면 끼니를 제때 못 챙기는 학생도 많다. 경기도교육연구원이 7월15~27일 경기도 내 초·중·고교 800곳(학생·학부모·교사 총 5만5966명)에 설문조사를 한 결과, 등교하지 않는 평일 점심을 ‘항상 먹는다’는 응답이 가정형편 기준 상층 학생은 65.4%인 반면 하층 학생은 41.1%였다.(‘코로나19와 교육: 학교 구성원의 생활과 인식을 중심으로’ 보고서)

유치원생이 엄마 휴대전화로 원격수업을 듣고 있다. 서보미 기자

유치원생이 엄마 휴대전화로 원격수업을 듣고 있다. 서보미 기자

<오후 수업 시간>

중2 박노아(경기)는 노트북으로 실시간 수업을 듣는다. 1학기에는 내내 휴대전화로 수업을 들었다. 귀찮아도 노트북을 켜기 시작한 건 “2학기에 실시간 수업으로 바뀐 뒤 수업하는 동안 계속 휴대전화를 들고 있느라 팔이 아파”서였다.

한때 노아처럼 휴대전화로 온종일 온라인수업을 듣는 학생은 많게는 “80%”(교사 김서인)나 된다. 중학교 사회 교사 김다현(경기)씨 반에선 절반 이상이 휴대전화를 사용해 실시간 수업을 듣는다. 하루는 화면에 자료를 올리고선 “○○야, 읽어봐” 했더니 “휴대전화라 글씨를 확대해도 안 보인다”는 채팅글이 올라왔다. 정상적인 강의와 배움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학생이 휴대전화로 수업을 들으며 누워 있거나 지하철을 타는 모습이 자주 화면에 공유되기도 한다.

휴대전화를 가장 편한 수업 도구로 느끼는 학생들도 있지만 휴대전화만 있는 학생들도 있다. 원격수업 시작 전 학교가 스마트 기기가 없는 학생을 조사해 태블릿PC 등을 대여해주기는 했지만, 수량이 부족해 휴대전화가 있는 학생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학교 온라인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기기를 갖고 있지 않다’는 학생도 전체의 18%나 된다.

<오후 체육 시간>
초3 김지혁(경기)은 ‘수영’ 영상을, 고1 다은이는 ‘스트레칭’ 동영상을 보기만 했다. 신체활동 시간인데도 몸은 전혀 쓰지 않았다. 초등학교 체육 전담 교사 이대혁(경기)씨는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도록 과제를 내줬다. 집에서 간단히 운동하는 ‘홈트레이닝’ 방법을 알려주고, 학생들이 직접 따라한 동영상을 제출하게 했다. 다만 과제를 공지하면서도 혹시나 홈트레이닝을 할 수 없는 학생이 있지 않을까 마음이 쓰였다. 한번은 “줄넘기하는 영상을 올리라”고 했더니 “우리 집은 좁고 집 밖은 위험해서 줄넘기할 공간이 없다”는 학부모들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학교 운동장이 신체 활동을 하는 유일한 공간인 학생들이 있다. 협소한 원룸, 도로에 붙어 있는 다세대주택 등에 사는 이들이다. 반면 아파트 단지에 사는 학생들은 언제든 놀이터에서 뛰어놀 수 있다. 또 가정 형편이 나은 편인 부모들은 “아이의 신체와 사회성 발달을 위해 마스크를 씌워서 태권도학원에라도 보내”(고3 학부모 남지수씨)려 한다. 집에만 있어 신체 발달이 고루 안 된 학생들은 기억력과 폐활량 저하, 우울증·분노 증가 같은 부작용을 겪을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방과 후>
초3 김규림(경기)의 ‘방과 후’는 일찍 시작된다. 20~30분짜리 동영상 4개를 집중해서 몰아 듣는 날이면 오전 11시에도 학교 일과가 끝난다. 그러나 기나긴 방과 후가 자유롭지는 않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수학·영어·독서·피아노·미술학원 수업을 온·오프라인으로 듣는다. 또 학교·학원·엄마 숙제도 해야 한다. 집에서 편히 놀고만 싶은 날도 있지만 규림이 곁에는 육아휴직 중인 아빠가 있다. 고등학교 수학 교사인 아빠가 공부에 끼어드는 것을 싫어하는 규림이는 대부분 혼자 공부하려 하지만, 수학 문제가 막힐 때면 툴툴대며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아빠는 육아휴직을 한 학기 더 연장했다.

초4 지윤이도 규림이처럼 오전 11시면 학교 수업을 마친다. 그때부터 영어·수학 학원의 온라인수업이 시작되는 오후 4시까지, 5시간 동안 자유시간이다. 학교·학원·엄마 숙제를 하다가도 자꾸 손은 휴대전화로 간다. 그래서 최근엔 하루에 휴대전화로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하는 시간을 ‘2시간30분’으로 줄이기로 부모님과 약속했다. 가끔 그 시간을 넘기면 “휴대전화를 그만하라”는 전화나 메시지가 날아든다. 회사에서 폐회로텔레비전(CCTV)으로 지윤이를 보고 있는 엄마다.

원래도 학생들이 학교를 벗어난 ‘방과 후’의 모습은 부모의 관리나 사교육 정도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원격수업으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공교육에서 빚어지는 학습 결손을 우려한 부모들이 자녀의 학습 관리에 더 신경 쓰거나 사교육 시간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1, 중2, 초3 세 남매를 둔 신우진(경기)씨도 “원격수업에서 배우는 게 정말 없어 보여” 2학기 들어 처음 중2의 수학 과외를 시작했다. 영어 과외 교사도 수소문하고 있다.

수업이 끝난 방과 후에도 교사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고2 담임교사 강민수(서울)씨는 학생을 학교로 불러 상담했다. 전면 원격수업에도 상담을 위한 등교는 용인되고 있다. 오늘도 학생은 불안과 우울을 호소했다. 이미 1·2학기에 학생 25명 중 3명이 심각한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질병휴학, 입원치료, 대안학교 위탁교육을 선택했다. “예년에는 전교생 중 한두 명이 있었을까” 했던 일이 반복되는 심각한 상황이다.

다른 교사들도 학생들의 ‘심리적 위기’ 징후를 읽고 있다. 고3 담임교사 문성준(경기)씨는 학교폭력(학폭) 담당 동료 교사로부터 “온라인 학폭이 늘었다”는 말을, 중학교 교사 김서인씨는 상담교사로부터 “몸이 열두 개라도 모자랄 만큼 (상담) 일이 많다”는 말을 들었다.

‘고립’이 중요 원인이다. 교사, 부모, 친구 같은 관계망이 급격히 약해진 학생들이 집에 고립된 채 공부와 미래에 대한 불안에 몰입하다보면 마음에 병이 생기기 쉽다. 때로는 불안과 분노가 외부로 표출돼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특히 청소년의 행동과 정서 발달에는 친구와의 상호작용이 중요하지만 2학기가 다 되도록 새로운 반 친구 한 명을 만들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고1 주선이는 아직 반 친구 이름을 절반도 외우지 못했고, 같은 학년 다은이는 사적으로 연락하는 반 친구가 한 명도 없다. “고1 수학여행도 다녀오지 못했고 어쩌다 학교에 가도 선생님이 ‘붙어다니지 말라’고 해서 대화도 못해요. 반 친구들과 있으면 서먹서먹해요.”(다은)

<저녁 시간>
밤 10시. 중3 이강희(서울)의 휴대전화는 꺼지지 않는다. “그만 자라”는 아빠의 말도 예전과 달리 흘려듣는다. 아침 6시에 일어나 학교를 다녀온 뒤 밤 10시에는 잠자리에 들던 일상이 무너진 지 오래다. ‘2배속’으로 온라인수업을 듣고서 과제를 제출하는 최소한의 공부만 한다. 원래도 혼자 게임하기를 즐겼지만 학교도, 학원도 가지 않게 된 뒤에는 게임에 더 몰입했다. 원격수업 덕에 처음 산 스마트폰이 ‘게임 세계’를 넓혀줬다. 일상이 파괴된 강희가 ‘은둔형 외톨이’는 되지 않을까 아빠는 걱정한다. “원래도 사람들과 부대끼는 걸 안 좋아하는 내성적인 성격인데, (원격수업이) 그런 성격에 기름을 부어 아이를 훨씬 고립시킬 것”만 같다.

내일, 학생들은 학교에 가고 싶을까 집에 있고 싶을까. 어느 정도 원격수업에 적응한 학생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집이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학교에서 선생님과 눈 마주치며 공부하고 친구들과 뛰어놀고도 싶다. 갈등하던 마음은 결국 한곳으로 모인다. 학교에 가고 싶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표지이야기-코로나 시대의 학교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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