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0일 오후 5시50분께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과거사법’(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 개정안이 통과된 뒤 기자회견에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최승우씨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피해자 배상 항목이 빠진 불완전한 형태지만 국가 인권유린 사건의 진상을 조사할 토대가 마련된 것에 기뻐했습니다. ‘한국판 아우슈비츠’라는 이름이 붙은 형제복지원은 1975년에 세워진 ‘부랑인 강제수용시설’입니다. 1987년 부산시 주례동에서 폐쇄될 때까지 구타와 감금, 강제노역, 성폭행, 타살, 암매장 등 불법적이고 반인권적인 일이 난무했고 확인된 사망자만 해도 500명이 넘습니다. 피해 생존자인 최씨와 한종선씨는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927일째 국회 앞에서 농성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제20대 국회가 이날 마지막 본회의를 열어 마침내 과거사법을 통과시켰습니다.(2~3쪽 참조)
그러나 피해자의 염원을 담아 국회에 뜨겁게 첫발을 내디뎠어도 결국 최종 문턱을 넘지 못한 법안이 수두룩합니다. 제20대 국회에서 의원이 발의한 법률안 총 2만3045건 중 2890건(원안+수정안), 13%만이 본회의에서 통과됐습니다. 입법 청원 운동도, 피해증언대회도, 국회·청와대 앞 농성도,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도 법 제정이 안 됩니다. 이해관계자와 야당의 반대, 여론의 무관심 등 장벽이 두꺼운 탓입니다. 법을 개정하고 제정하는 국회에서 그 기본 임무를 이행하는 게 녹록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원은 많은 것을 할 수는 없지만 마음먹은 것은 해낼 수 있는 권한”(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지녔습니다. 수많은 난관이 있어도 “통과될 때까지 악을 쓸 사람(의원)”이 있으면 입법이 가능하답니다. 반쪽이 된 법안이라도 “일단 제정하고 추후 수정”(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할 수도 있습니다. 개헌 빼고 뭐든지 할 수 있는 177석의 거대 야당이 ‘일하는 국회’를 약속했으니 5월30일 개원하는 제21대 국회에 더욱 기대가 큽니다.
여기, 제21대 국회에 보내는 7통의 손편지가 있습니다. 수신인은 자신의 요구를 책임 있게 실현해나갈 것으로 기대하는 제21대 국회의원과 정당입니다. 발신인은 10대 청소년, 성소수자, 20대 여성, 학부모, 배달노동자, 임계장, 1인 가구입니다. “확실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구체적인 이행 방안 등을 포함한 강력한 기후 법안이 절실합니다.” “현 정부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를 피하려는 듯합니다.”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에 대한 처벌뿐 아니라 피해자 보호를 위해 어떤 법을 추진하실 생각인가요?” “중학생들이 좀 많이 먹습니다. 조금 투명하게 예산이 운영되어 급식의 부실화를 원천적으로 막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매일같이 위험하고 난폭한 운전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입니다.” “사람이 존엄을 유지한 상태로 삶을 마칠 수 있을까요?” “혼자 살 수 있는 작은 국민주택을 더 많이 지을 수 있는 법이 있으면 좋겠네요.”
정성스러운 손편지가 국회의원의 마음, 마음에 가닿아 발신인들의 요구가 결실을 거두기 바랍니다. 반복되는 사고를 막기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나 손해배상·가압류 피해자를 지원하는 노란봉투법처럼 국회의 논의 테이블에 올라가보지도 못하고 임기 만료로 폐기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국회 밖 여론으로 힘을 보태겠습니다.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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