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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토크] ‘탈권위’ 레벨업

등록 2020-05-02 05:35 수정 2020-05-05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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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혜인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자가 4월28일 유튜브에 올린 ‘국회의원 배지 언박싱(개봉)’ 영상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일부 언론과 용 당선자의 페이스북에서 비판적인 반응이 잇따랐습니다. 대체적인 비판 요지는 ‘국회의원 자리의 무게감에 견줘 가벼운 행동이었다’는 것으로 모아집니다. 용 당선자는 지난호(제1310호) 표지이야기에서 “고루한 국회 탈권위주의를 촉구하는 상징적 의미로 국회 잔디밭에서 동료들과 짜장면을 시켜먹으려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국회의원 당선자에 대한 시민과 언론의 평가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다만 몇 가지 점을 짚어보려 합니다. ‘50~60대 아재’가 80% 넘게 독과점하는 국회는 지난 십수년간 우리나라 주요 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꼴찌 수준을 면치 못했습니다. 낮은 신뢰도에는 국회의 권위주의 문화도 한몫했으리라 봅니다.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대의민주주의 기관인 입법부의 신뢰도가 바닥이라면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2년7개월간 취재기자로 경험한 국회는 ‘법 위의 관행’ 같은 게 존재하는 곳입니다. 오랜 세월 관행처럼 켜켜이 쌓여온 권위주의를 쉽사리 무너뜨리기 어려운 조직입니다. 때로는 권위주의를 끌어내리기 위해 아슬아슬한 ‘파격’도 가능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파격적 행보가 그동안 보지 못한 모습이라 낯설 수도 있지만요. 용 당선자의 ‘언박싱 영상’이 그런 사례가 될 수 있지 않을지요.

분량 제한으로 지난 표지이야기에 다 담지는 못했지만 다른 1990년대생 당선자 2명도 국회의 탈권위에 일조하겠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애초에 권위주의가 없습니다. 여느 청년들의 모습에서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찾을 수 없는 것처럼요.”(전용기 당선자) “비정규직 노동자 출신이라 권위주의란 게 없습니다. 국회의원 생활은 불필요한 의전과 특혜를 내려놓고 (당선 이전에) 하던 대로 하겠습니다.”(류호정 당선자) 덧붙여, 세 사람은 인터뷰 내내 단어 하나하나를 고르고 고를 정도로 국회의원의 무게를 깊이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언박싱 영상’ 논란을 보면서 ‘코미디를 다큐멘터리로’ 받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처음으로 국회에 들어온 90년대생들이 관행이라는 이름의 권위주의 틀에 갇혀 자신들의 빛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탈권위주의를 위한 ‘퍼포먼스’보다는 국회의원으로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입법과 정책 활동으로 자기 존재를 입증해야 하는 고단한 길을 선택해주길 바랍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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