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을 앞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보조금으로 440억7천여만원을 12개 정당에 3월30일 지급했다. 이 와중에 보도자료를 보는 사람들 눈을 잡아채는 뜻밖의 소식이 있었으니, 허경영 대표가 이끄는 국가혁명배당금당에 여성추천보조금 8억4200여만원이 돌아간 ‘사건’이었다. 배당금당은 전국 253개 지역구에 77명(30.4%)의 여성 후보를 추천하며 여성추천보조금으로 책정된 금액의 100%를 받아갔다.
선거보조금은 정당을 보호하고 육성할 의무를 지닌 국가가 헌법 규정에 의해 정당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보조해주는 것을 말한다. 그중 여성추천보조금은 여성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2002년 도입됐다. 전체 지역구 중 30% 이상 선거구에 여성을 공천할 때 주어지는 보조금이다. 여성을 30% 이상 공천한 정당이 없으면 보조금 일부를 여성 공천 비율에 따라 차등 지급한다. 20대 총선에선 여성을 30% 이상 공천한 당이 없어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민중연합당이 보조금의 일부를 나눠 가졌다.
전략적으로 여성을 공천했든 단순한 우연의 일치였든, 이런 상황이 벌어진 데는 기존 정당들이 여성 후보 추천에 소홀했던 배경이 있다. 여성 의원 수는 15대 국회까지 한 자릿수에 불과했다가 비례대표 여성 30% 할당제를 도입한 16대 총선부터 두 자릿수로 늘었다. 교호순번제(번호 없이 개별 후보 이름을 가로로 배열하는 것)와 비례대표 여성 할당 50%가 도입된 이후인 17대 선거에선 39명으로 늘었다. 20대 국회에선 51명(17%)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전세계 평균(24.3%)과 격차가 크다.
성범죄 전과가 있는 후보를 공천한 배당금당이 여성추천보조금을 독식하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사진 한 장이 떠오른다(사진). 2017년에 찍힌 ‘한국 페미니스트협회 창립총회’ 사진이다. 여성 2명을 제외한 모든 구성원이 장노년층 남성이고, 색소폰을 든 남성이 중앙에 있다. 언어와 실제의 간극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현 상황과 궤를 함께하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천다민 한겨레 젠더 미디어 PD
관심분야 - 문화, 영화, 부귀영화
제21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유례없는 번복 공천이 일어났다. 무려 세 차례 결정을 번복하면서 자격미달로 탈락했던 후보자가 최종 후보로 낙점됐다. 경북 경주 미래통합당 후보자가 된 이 희극의 주인공은 김석기 현 의원이다. 애초 그는 컷오프 대상자였다. ‘물갈이’라는 말처럼 현역 의원에 대한 평가를 통해, 그는 경선 기회조차 없었다. 다른 두 후보가 경선을 치러 승자가 결정됐다. 그런데 당 최고위원회는 경선 무효를 선언하고, 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이곳을 단수 추천 지역으로 전환, 경선에서 탈락한 후보를 공천한다. 4시간 뒤 이마저도 무효가 되고, 경주는 재경선 지역이 된다. 재경선은 최초 경선에서 1등 한 후보자를 제외하고, 경선 패배자와 컷오프한 김석기 후보의 양자 대결로 치러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후보 등록 마감 하루 전날 여론조사가 진행됐고, 김 후보가 승리한다.
이 ‘호떡 공천’은 ‘공천’인가 ‘사천’인가. 그를 살리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경선이 계속 번복된 이유도, 애초에 탈락했던 후보자가 재경선에 올라온 근거도 없었다. ‘사천’은 ‘황천’이었다. 황교안 대표는 미래통합당의 공천 결과를 두고 ‘계파, 외압, 사천 없는 3무 공천’이었다며 스스로를 치켜세웠지만.
김석기 후보자는 2009년 서울 용산 참사가 일어났을 때, 경찰청장 내정자이자 서울경찰청장이었다. 2019년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김석기 등 경찰 수뇌부가 국민의 안전을 도외시한 성급하고 무리한 진압작전을 강행해 국민이 사망한 사건’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같은 해, 김 후보자는 “지금도 같은 결정을 할 것”이라고, 자청한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2010년 그는 “미국 경찰이었으면 발포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현재 경주에는 용산 참사 공동변호인단이던 권영국 정의당 후보와 한나라당 출신 정종복 무소속 후보가 출마했다. 20대 총선에 이어 리턴매치다.
임경지 학생, 연구활동가
관심분야 - 주거, 도시
그림책 의 작가 백희나가 3월31일(현지시각) 아동문학계 노벨상이라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받았다. 상금은 6억원. ‘경이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라는 평을 받은 그의 작품 은 10여 개국에서 번역되고 TV 시리즈와 뮤지컬, 캐릭터 상품으로도 흥했다. 하지만 작가는 그에 대한 어떤 이익도 얻지 못했다. 신인 시절, 모든 저작권을 출판사가 가지는 불리한 계약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백 작가가 맺은 ‘매절계약’이란 일정액만 받고 2차 콘텐츠 창작과 사용에 대한 권리 모두를 넘기는 계약이다. 공정거래위원회도 매절 관행이 불공정하다고 밝혔지만, 1심과 지난 2월의 2심까지 작가의 저작권 소송에서 법원은 출판사 손을 들어주었다. ‘이상문학상 사태’로 절필을 선언한 윤이형 작가의 말대로 “작가들은 2020년을 살고 있는데, 아직도 7080년대인 (출판) 관행”이 이어지는 것이다.
백 작가는 저작권 소송이 ‘현재’를 사는 작가를 위한 것이라고 트위터에 썼다. “은 잊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들라고요? 그 문제가 아닙니다. 승산 없는 험난한 싸움이라는 것, 저라고 모르겠습니까? 이럴 시간에 인형 눈알이라도 하나, 더 만드는 게 저에게 현실적인 이득이란 거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그렇게 덮어버리고 잊어버리면 스스로를 납득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어찌 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재수 없는 계약 사건’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참고, 잊어버리고 넘어간 일들이 앞으로도 크고 작은, 수없이 많은 약자들의 권리들을 짓밟는 일에 동조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정성은 콘텐츠 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 PD
관심분야 - 웃기고 슬픈 세상사
교민들이 뿔났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각국이 자국민에게 사회적 거리 두기를 권고하면서, 4월1~6일 진행되는 재외국민 선거가 ‘반쪽짜리’가 된 탓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3월26일 17개국 23개 재외공관의 재외선거사무 중단 결정을 내린 데 이어, 30일 25개국 41개 재외공관의 재외선거사무도 추가 중단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17만 명에 이르는 재외국민의 절반(약 8만명)이 투표에 참여할 수 없게 됐다.
미국 교민은 “한국행 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데다 운 좋게 구하더라도 가격이 천정부지로 뛴 상황에서, ‘투표를 하려면 귀국하라’는 안내 전자우편을 받고 황당했다”고 전했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에선 투표권 보장을 요구하는 캠페인이 이어졌다. 독일과 캐나다에 거주하는 교민 25명은 4월1일 헌법소원 심판청구와 가처분신청을 냈다. 선관위가 “불가피한”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현지 교민들의 이동이 어렵고 투표함을 적시에 국내로 옮겨오기 어렵다는 점이 작용했다. 전세계에서 해운·항공 운송이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이참에 ‘선거 뉴노멀(새 표준)’ 논의가 활발하다. 선거에 대한 상상력을 현실로 불러오자는 것이다. 투표소에 가지 않고도 투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는 요구가 첫 번째다. 재외국민유권자연대는 “우편·인터넷 투표 제도를 진작에 도입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성명을 냈다. 정부도 마냥 손 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선관위는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시범사업을 통해, 블록체인 기반 온라인투표 시스템을 개발했다. 지난해 말엔 조달청 나라장터에 ‘블록체인 기반 온라인투표시스템 구축 정보화전략계획(ISP) 수립 사업’을 공고하고, 이르면 4월 안에 블록체인 기반 선거플랫폼 구축을 위한 중장기 대안을 내놓기로 했다. 이번 총선에 당장 적용하긴 어렵더라도, 최신 기술을 활용해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계속 찾고는 있었다.
투표일 대신 ‘투표주간’이나 ‘투표월’처럼, 선거기간을 확대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 연구기관 뉴아메리카의 리 드루트먼 선임연구원은 미국 정치매체 기고에서 코로나19가 촉발한 ‘비대면 선거’ 논의가 영구적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시민들이 한번 사전투표 또는 우편투표의 편리함을 경험한다면 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정인선 블록체인 전문 미디어 기자
관심분야 - 기술, 인간,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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