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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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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진로 놓고 드러난 아빠의 위선

편집장의 편지
등록 2019-09-10 00:51 수정 2020-05-03 04:29

아이의 꿈은 자주 바뀐다. 첫 꿈은 마트 계산원이었다. 집 앞 마트에서 모든 물건의 바코드를 찍은 뒤 돈을 받는 점원이 주인이라고 생각했나보다. 과자 욕심 많은 어린아이 눈에 계산원이 되면 온 세상 과자가 다 제 것이다. 시간이 좀 지나 유치원 선생님, 좀더 자라자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꿈이 바뀐다. 그것도 잠시, 이제 파티시에(제과제빵사)다.

중1이 된 지 얼마 안 돼 학교에서 진로상담을 받고 온 둘째 아이가 특성화고등학교를 가겠다 선언했다. 요리경연대회에도 나가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단다. 초등학교 때까지 아침 인사로 “잘 놀다 와”를 건네던 내 입에서 조금씩 “숙제는 해야 하지 않니” “휴대전화 그만 좀 보고 책을 읽든지 공부를 하든지 해”라는 말의 횟수가 늘 때였다.

“그럼 대학은?”

“선생님이 그러는데 특성화고 가면 내신이 더 유리해서 대학에도 들어가기 쉽대.”

“대학 가려는 친구들 틈에서 공부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내가 언제 대학 안 간대? 아빠보다 더 좋은 대학 갈 거야.”

“특성화고 가면 대학 가기 어려울걸. 대학 나와서 파티시에 해도 늦지 않잖아. 그래야 살면서 기회도 많아져.”

당황한 나는 딸과 대화하면서 오랫동안 숨겨온 위선을 드러내고 말았다. 대학을 가든지 안 가든지 네 선택을 존중하고, 학벌을 따지면 안 된다는 입바른 소리를 하던 아빠였다. 출신 대학을 묻는 딸을 훈계했다. 사회에서도 일부러 대학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그 잣대로 세상을 판단했다. 내 아이의 문제로 닥치자 숨겨진 욕망, 세상이 우열을 매긴 욕망이 나의 일부였다는 게 탄로 났다. ‘고졸’을 차별하는 세상에 분노하고, 학벌로 줄 세우는 데 반대하고, 학벌과 능력은 별개라고 외치던 나는 딸의 진로 앞에서 어이없이 무너졌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다. 어릴 적 시골 친구들은 대개 공고와 상고, 농고를 갔다. 지금은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라고 한다. 인문계고등학교를 간 친구는 소수였다. 부모의 직업은 서넛을 빼곤 다 농업이었다. 대학까지 간 초등학교 동창생 비율은 20% 밑이었다. 고향 친구의 눈에 대학을 나온 나는 특별했다. 특별함은 시선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강력히 작동한다. 대학, 그것도 한 줌 이름 있는 대학을 나온 이들이 계층 사다리 더 높은 곳에 오르는 세상이다. 다수를 배제한 공간 안에서 소수의 자리다툼 경쟁이 있을 뿐, 다수에게 기회균등은 허락되지 않는다. 고교 졸업생 열에 일곱이 대학을 가는 현재에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더 심해졌는지 모른다. 그래서 2년제가 아닌 4년제, 지방이 아닌 수도권, 수도권이 아닌 ‘인(in)서울’, 인서울이 아닌 ‘스카이’(SKY)로 몰린다.

간판의 순위는 부모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란 조건에 좌우된다. 대학별로 학생 부모의 소득과 자산을 계산해 많은 순서대로 줄 세운다면, 끔찍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부의 크기와 대학 서열이 비슷한 차례로 나열될지 모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그런 실증 통계는 없다. 미국에서 그와 유사한 통계가 있다. 최고 대학 중 하나인 하버드대학 학생 부모의 연소득은 평균 45만달러(약 5억4천만원) 정도로, 미국 소득 상위 2%에 든다(에서). 우리는 얼마나 다를까.

D공고 3학년 1반 학생 32명은 처음부터 불리했다. 하어영 기자가 2011년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 62%가 차상위계층 이하였다. 8년이 지났다. 하 기자가 방준호 기자와 함께 그중 20명을 다시 만났다. 그들 삶의 궤적을 그려봤지만 부모를 딛고 성공적으로 계층 사다리를 오른 사례는 꼽기 어렵다. 아직 평가하기 이르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그들의 삶을 짐작했기에, 중1 아이의 특성화고 진학을 만류했던 걸까. 가치와 현실 속에 비겁한 또 한 인간의 모순이 고발된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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