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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식씨 가족

편집장의 편지
등록 2019-09-03 11:37 수정 2020-05-03 04:29

3년 전 상상도 못했던 삶을 살고 있다는 의겸씨는 우즈베키스탄에 있다. 몇 달 전 손가락을 다쳐 병원에 입원했다 만난 우즈베키스탄 유학생을 통해 알게 된 돈벌이가 그를 낯선 그곳으로 이끌었다. 의협심 넘치던 부조리 ‘고발자’는 이제 한국의 80년대 어느 중소도시 느낌의 낯선 곳에서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는 한국에서 중고차를 수입해 우즈베키스탄에서 판다.

우즈베키스탄의 자동차 관세, 공무원 뇌물 등에 정신이 팔려 있는 그에게 뜬금없이 말을 걸었다. 8월29일 새벽 2시쯤이니, 대법원의 국정 농단 판결 12시간 전이었다. 그는 걱정이 앞섰다. “박근혜, 최순실만 처벌받고 ‘진짜 회장님’들은 빠져나가는 건 아닐까요.”

역사적인 대법원 판결이 난 뒤 정현식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랐던 결과였지만, 이제 지쳤는지 마침표를 찍지 못한 사건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야 하는데….” 별일 없이 잘 지낸다면서도 ‘나라가 어수선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우즈베키스탄으로 날아간 아들도 마음이 쓰이지만, 시선은 그 너머 세상을 향했다.

경기도 남양주에 살면서 가끔 서울 나들이를 한다는 그는 지난달 참여연대에서 하는 ‘공익제보자의 밤’ 행사에 다녀왔다. “부당한 현실에 침묵하지 않고 양심의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들”을 위한 행사에 그와 그의 부인 이정숙씨, 그리고 아들 의겸씨는 주인공이다. 이정숙씨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에도 사법 잣대가 재벌에 너무 관대한 건 아닌지 우려를 씻지 못했다.

세 사람은 2년 전 참여연대에서 주는 ‘의인상’을 받았다. 국정 농단 사건을 밝힌 주역을 혹자는 JTBC 손석희 사장, 혹자는 김의겸 전 기자, 혹자는 박영수 특별검사 등을 꼽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겐 국정 농단 사건의 진실을 드러낸 주인공이 이 가족이다. 2016년 세 사람은 권력으로부터 위험과 두려움, 압박을 느꼈다. 회피하고 도피하다 끝내 호루라기를 분 이들의 용기와 고발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그리고 많은 공범과 부역자의 단죄로 이어졌다.

정현식씨가 하필 케이스포츠재단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시작된 그 가족들이 겪은 이 운명의 시간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6년 9월6일 처음 그의 집에 기자가 찾아갔다. 정현식씨를 만나지 못한 채 이정숙씨에게 명함만 건네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 뒤 정현식씨는 기자와 통화는 했으나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그해 9월20일치 1면 머리기사로 최순실 게이트의 첫 물꼬를 튼 가 한창 특종을 이어가던 10월18일, 신분을 드러내지 않은 한 중년 여성이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최순실이 숨긴 ‘진실의 비밀 금고’ 존재와 위치를 알려줬다. 아직도 기자의 전화기에 ‘익명 제보2’로 설정된 이가 바로 이정숙씨다. 그 뒤 의겸씨를 만나 금고 안에 뭐가 있는지 소상히 들었다. 회피하고 주저하던 아버지를 엄마와 아들이 설득했다. 은행원 출신인 정현식씨는 신뢰하게 된 기자에게 마침내 10월23일 진실의 비밀 금고를 활짝 열어줬다.

엿새 뒤 처음으로 서울 청계광장에서 1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그 뒤 정현식씨는 기꺼이 무대에 올랐다. 새벽까지 이어진 수차례의 검찰 진술, 생중계된 국회 청문회 증언, 법정 증언에 나섰다. 그새 수만 개 촛불은 들불처럼 수백만 개 촛불로 번졌다. 대통령도 역사상 처음으로 탄핵됐다.

평범하지만 위대한 한 가족의 용기가 역사의 흐름을 바꿨다. 8월29일 박근혜, 최순실, 이재용 세 사람의 대법원 판결 곳곳에 적시된 혐의에 정현식씨 가족의 용기가 스며 있다. 특별취재반 기자들이 쓴 (돌베개)에서 정현식씨 가족의 자취가 기록돼 있다. “나서서 세상에 진실을 알리는 나팔을 불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역사는 조금 다르게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다수에게 낯선 이름이겠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큰 빚을 졌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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