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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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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빈석 관중

편집장의 편지
등록 2019-07-30 11:59 수정 2020-05-03 04:29

보는 축구보다 하는 축구에 재미 들린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공을 찰 짬을 내지 못하니 오랫동안 보는 축구에 만족했다. 국내 프로축구는 성에 차지 않아 주로 ‘국대’(국가대표) 경기를 챙겨보는 식이었다. 손흥민이 뛰는 프리미어리그에도 잠시 눈을 돌렸으나 하이라이트나 그의 활약을 보여주는 짧은 영상에 그쳤다.

보는 축구의 맛은 역시 국대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아세안컵, 아시안게임, A매치 등에서 주로 잘할 때만 TV를 켜는 식이다. 그 가운데서도 한일전은 비교 불가, 대체 불가라 할 만큼 끌어당기는 힘이 세다. 개가 마당에서 닭을 보면 물어뜯으러 달려가는 것처럼, 일본과의 경기를 볼 때마다 공격적 본능이 꿈틀댄다. 나이 들어 민족주의를 경계하면서 좀더 세련되게 지켜보고 반응할 뿐, 저 밑바닥 ‘감정 애국’은 그대로다. 부풀려 말해 우리 팀이 잘하면 국가의 승리요 못하면 국가의 패배였다. 이겼을 때 우리 선수, 우리 팀을 바라보는 일본 언론과 심지어 이름 없는 일본 네티즌의 반응까지 불필요하게 전해주는 기사를 엿보기도 한다. 그들이 우리를 시샘하는 것으로 확대해석해 승리의 감정은 한껏 고무된다.

해방 이후 최악으로 치닫는 지금의 한-일 관계를 보면서 새삼 한일전이 떠오른다. 이기든 지든 한국 팀을 응원하는 게 숙명이다. 다른 선택이 허락되지 않는다. 어찌 어느 팀이 이겨도 상관없으랴. 그래도 선수와 관중에게 지나친 흥분은 가라앉히라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감독이 제대로 전략을 세웠는지 논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경기에서 지거나 경고 누적으로 다음 게임에서 불리해진다.

한껏 흥분이 고조된 지금 이런 한가한 소리를 하기 조심스럽다. 페어플레이를 하지 않는 상대편 선수의 반칙, ‘탄핵’을 들먹이며 야유를 퍼붓고 경기장에 물병까지 던지는 저쪽 응원단의 도발 때문만이 아니다. 이쪽 귀빈석에 앉은 염치없는 관중이 더 거슬린다. 보수언론, 보수정당이라 일컫는 이들은 상대팀의 무리한 반칙 직후 우리 선수와 감독을 향해 삿대질한다. 과거에는 감독에게 믿고 맡겨야 한다고 목청껏 외쳤던 이들이다. “대법관들이 잘못 끼운 첫 단추” “문 정부의 국가 경영 능력 한계에” “제국주의 후예들에 설마 하다 기습당한 아마추어 정권”…. 자신들이 원했던 감독과 선수가 국대에 뽑히지 않았기에 손가락은 저쪽이 아닌 이쪽을 가리키느라 분주하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에도 청산 없이 오랜 세월 기득권을 누려온 이들의 유전자를 향한 사람들의 의심을 자초했다.

중계석과 일반 관중석에서조차 비난의 소리가 커지자, “극일과 반일 프레임에 가두지 마라” “지금 무슨 친일, 신친일(이냐)” “‘친일’로 국민 편 가르지 말고 일본 숨통 죌 비책 내놔라”라고 고상하게 훈계한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늦은 말이다. ‘반문재인 프레임’에 갇힌 이들이 먼저 분열과 갈라치기를 한 탓에, 차분하고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의 값어치가 떨어졌다.

“일본 사람들이 히죽이 웃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자기 나라 대통령이 자기네 땅임을 확인한 행사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한국을 보며 어찌 흐뭇하지 않겠는가.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후원하고 국론을 모아가는 중요한 후속 조치에서는 우리가 일본에 지고 있는 것 같아 하는 소리다.” 2019년 보수우익의 모습은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해 한-일 관계를 악화했을 때 김대중 고문이 쓴 이 칼럼에 비춰보면 자기모순적이다. 칼럼은 이렇게 끝난다. “우리 대통령의 결정을 믿어주고 밀어줘야 한다.” 밀어줘야 할 대통령이 이명박이 될 순 있지만 문재인이 될 수 없어 보인다. 다 덮어두고 대통령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자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 편 선수와 감독에 대한 호불호에 갇혀 우리 팀을 저주해선 곤란하다. 그래선 정작 해야 할 비판과 비평마저 위축된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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