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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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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편집장의 편지
등록 2019-03-26 10:51 수정 2020-05-03 04:29

‘그1’을 잊고 지냈다. 수첩에 사인을 해준 기억은 또렷하다. 별볼일없는 기자가 사인까지 요청받았으니. 사진도 같이 찍었던 것 같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솔직히 듣자마자 잊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고마운 마음은 컸다. 을 사랑해줬고, 먼 걸음을 해줬고, 자리를 빛내줘서다.

‘그2’를 매일 보다시피 한다. 처음 봤을 때 그의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엿새 뒤 그가 단체대화방에 들어왔다. 그가 그때 봤던 그2란 걸 전해들었지만, 금세 까먹었다. 지금은 기자가 대화방에 소식을 띄우면 그가 맨 먼저 반응한다. 너무 감사하다.

그1과 그2, 두 사람을 처음 만난 건 한날한시였다. 지난해 11월9일 서울 종로구 문화공간 ‘온’에서 열린 ‘2018 한겨레21 #독자와 함께’ 행사에서다. 둘 다 10년 정기구독자다. 앞다퉈 종이 매체를 등지는 세상에, 강산도 변한다는 시간 동안 을 붙잡고 있는 독자는 그냥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고마운 존재다.

어제와 그제, 두 사람이 차례대로 소중한 뭉칫돈을 보내왔다. 제1254호에서 첫발을 뗀 후원제에 힘을 보탰다. 그들에게 전화했더니, 되레 “있어줘서 고맙다”고 한다.

지난해 독자 참여와 소통 강화를 꾀하면서 진명선 기자가 잉태한 ‘독편3.0’이 없었다면 올해 후원제 시행은 없었을지 모른다. 독편3.0의 하나로 추진된 ‘#독자와 함께’ 행사가 아니었다면, 그1과 그2의 후원도 상상할 수 없다. 거창하게 말해 의 독자 참여 저널리즘은 독자 후원제 실험으로 진화했다. 그 시작과 끝은 독자다. 독자 없이는 불가능한 실험들이다.

“열심히 하니까, 아깝지 않다. 잘하고 계신다. 에 기쁨을 주고 싶었다. 많은 분이 (후원)하겠지만, 더 힘을 내라고. 좋아하는 데니까, 선물 같은 걸 드리고 싶었다. 책을 좋아하는데 못 보는 대신 을 빠짐없이 본다. 지금처럼만 해주면 감사할 따름이다.“(그1)

“ 제2창간 운동(2005년) 때 나와 남편, 아이 세 사람 이름으로 후원했는데 잘 안됐다는 얘기를 듣고선 슬펐다. 이번엔 잘되길 기원한다. 은 존재만으로도 큰 의미이자 위로다. 많은 사람에게 힘을 주는 매체다. 주변에서 험담하면 속상하다. 괜찮은 척하지 말고 힘들면 힘들다고 어려우면 어렵다고 말해라.”(그2)

후원제 시작 뒤 불과 며칠 만에 참여자가 100명이 넘었다. 그1과 그2도 그분들 중 일부다. 그1은 박선영 독자, 그2는 이은주 독자다. 큰돈을 내면서도 이름을 숨기고 싶어 한 그3, 1천원짜리 한 장을 내놓은 그4 그리고 그5, 그6, 그7…. 하나하나 이름을 부르고 남겨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지만, 좁은 지면이 원망스럽다. 나라 밖에서 돈을 보내거나 문의하는 분도 있다. 모두 과 특별한 인연이 있거나 애정을 가진 ‘후원 독자’들이다.

반신반의했지만 기대와 설렘이 없었다면 첫발을 떼지 않았다. 막상 예상보다 큰 응원을 지켜보면서 기쁨과 고마움에 들떠 있다가도 이내 정신이 바짝 든다. 가녀린 다리, 좁은 어깨 위에 쏟아지는 짐들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후원을 받겠다면서 약속했던 양질의 기획, 심층, 탐사 보도는 평소에도 추구했던 저널리즘의 가치였지만, ‘지금보다 더 잘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엄습해온다. 박선영 독자는 “편하게 생각하라”, 이은주 독자는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말했지만, 잘 뛸 수 있을지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이제 독자 참여 저널리즘에서 시작해 독자 후원제를 거쳐 어느덧 심층 저널리즘으로 향하는 길목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1년 뒤 은 어떤 평가를 받을지…. 최선을 다할 뿐이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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