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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겉과 속

편집장의 편지
등록 2018-09-22 17:11 수정 2020-05-03 04:29

2004년 한 해가 저물 즈음이었다. 몸담고 있던 신문 정치부에서 송년회 겸 금강산으로 모꼬지를 갔다. 누구나 육로로 금강산 구경을 갈 수 있던 때였다. 이른 아침 일행을 태운 관광버스가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정복을 입은 북한군이 버스 안으로 들어와 절도 있는 동작으로 발걸음을 떼며 검문할 때는 자못 긴장감이 흘렀다. 병사가 내린 뒤 남쪽 버스는 북녘 들판을 시원하게 내달렸다. 버스가 갑자기 속도를 줄였다. 검은 인민복을 입은 무뚝뚝한 표정의 북녘 사내들이 도로 옆 수로를 정비하는 모양이었다. 하나같이 깡말랐다. 어릴 적부터 상상하던 그런 북한 주민의 모습이어서 놀라지도 않았다. 버스를 탄 남녘 관광객보다 키는 평균 한 뼘은 작아 보였다. 말을 걸고 싶었지만 버스에서 내릴 수는 없었다.

2007년 5월, 일주일 넘게 평양에 취재하러 갈 일이 있었다. 평양 시민은 그전에 봤던 북녘 고성 주민들과는 또 달랐다. 옷의 색깔은 더 다채로웠고 키는 남녘 사람들과 별 차이 없었다. 북쪽 1등 시민인 평양 거주자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과는 겉모습부터 달랐다. 성분 좋은 평양 시민들은 경제적 형편이 괜찮으니, 다른 지역보다 영양 상태도 더 나은 결과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제2 도시 남포로 가는 길에 본 북녘 사람들은 금강산 가는 길에 봤던 주민들과 비슷했다. 버스로만 이동했던 남쪽 일행은 늘 차창 밖 시민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항상 붙어다녔던 안내원도 일행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

2018년 9월18일 순안공항(평양국제비행장)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마중 나온 평양 시민들에게 다시 눈이 갔다. 한반도기와 공화국기를 흔드는 그들 앞에서 남녘의 대통령이 허리를 90도 굽혀 인사했다. 최고지도자가 인민에게 좀체 허리를 굽히지 않는 북한에서, 평양 시민들은 그 순간 어떤 생각을 했을까.

평양은 겉보기에 변했다. 11년 전 잿빛 도시는 좀더 밝아졌다. 고층 건물도 늘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능라도 5·1경기장에서 “평양의 놀라운 발전상을 봤다”고 했다. 북녘 주민들 앞 남녘 대통령의 연설은 믿기지 않을 만큼 몽환적이었다. 이때 연설을 듣던 15만 평양 시민의 속마음은 어땠을지 궁금했다.

11년 전 평양을 방문했을 때 평범한 평양 시민을 만나 얘기 듣고 싶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달리기를 하러 숙소인 양각도 국제호텔을 나섰다. 목에는 녹음이 되는 엠피스리(MP3)를 찼다. 뛰어봤자 호텔이 있는 고립된 섬을 벗어날 수 없었다. 남쪽 일행은 평양 시민들과 단절돼 있었다. 뛰다보니 대동강 위에 떠 있는 배에서 낚시하는 노인이 보였다. 배는 섬과 철제 다리로 이어졌다. 노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질문과 침묵의 반복, 30분 넘게 흘렀지만 경직된 노인은 기억에 남을 만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노인은 당에 신고했다. 허가 없이 남쪽 인사를 만났으니, 나중에 문제될까봐 한 안전 조치였다. 이날 북쪽은 이 일을 핑계로 남쪽 일행의 일정을 취소하겠다고 을러댔다. 다행히 탈 없이 마무리됐으나, 계획은 소란만 일으킨 채 실패로 끝났다.

공항에서, 길거리에서, 경기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환대하는 평양 시민들도 그때 봤던 노인만큼이나 경직돼 보였다. 깃대를 흔들고 “조국 통일”을 외치는 순간의 표정과 행동에는 과잉이 엿보였다. 잠잠할 때와 대비돼 더욱 그랬다.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담은 말은 남쪽으로 전파를 타거나 활자화되지 못했다. 2007년과 달리 2018년 평양의 겉은 달라졌지만 속은 여전히 알 수 없다.

다시 평양에 갈 수 있다면 그 노인을 만나 자유롭게 얘기 나누고 싶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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