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릴 때는 탁구가 지금보다 훨씬 대단한 인기 종목이었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동네 탁구장’의 존재입니다. 저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탁구를 못 치지만, ‘선수급’ 동네 형들의 복식 대결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때 탁구장에서 이에리사, 정현숙, ‘사라예보의 기적’ 따위의 얘기를 들었고 한국이 탁구를 꽤 잘하는 나라라는 자부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억나는 것이 1988년 서울올림픽입니다. 자국 수도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한국 대표팀은 유남규의 남자단식과 양영자·현정화의 여자복식, 두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냅니다. 한국이 탁구 남자단식에서 올림픽 금메달이라뇨! 지금 생각하면 지나가던 소가 기절할 일이지만, 당시 결승전은 심지어 신예 유남규와 노장 김기택이 맞붙은 한국 선수들끼리의 ‘내전’이었습니다.
지금은 공중파에서 좀처럼 탁구 중계를 하지 않지만 예전엔 올림픽뿐 아니라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등 큰 경기가 있을 때마다 방송사가 ‘위성중계’를 해줬습니다. 왜 이렇게 탁구 얘길 길게 하느냐고요? 코앞에 다가온 평창겨울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논쟁이 격화되다보니, 문득 1991년 4월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코리아팀’이 생각나 해보는 얘기입니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지 워낙 오래된 탓에 요샌 북한 선수들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지만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계순희(유도), 배길수(안마), 리분희(탁구) 같은 뛰어난 북한 선수들은 남한에서도 익숙한 이름이었습니다. 모두 알다시피 1991년 지바 대회에서 현정화·홍차옥(남한), 리분희·유순복(북한)으로 이뤄진 코리아팀은 결승에서 ‘한국 킬러’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마녀’ 덩야핑이 이끌던 중국을 3-2로 꺾고 우승을 차지합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단식에서 가오준을 꺾고 그 자리에서 깡충깡충 뛰던 유순복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말 그대로 한반도 전체가 울었고, 서로가 서로를 부둥켜안았습니다. 한국이 낳은 불세출의 탁구 스타 현정화는 그다음 대회인 1993년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단식 금메달을 따낸 뒤 은퇴의 길을 걷습니다. 이후 2004년 ‘탁구 신동’ 유승민이 이뤄낸 아테네의 기적이 한 번 더 있었고, 이제 더 이상 우리는 탁구에 열광하지 않습니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남북 단일팀 구성을 둘러싼 논란을 보고 솔직히 저는 좀 놀랐습니다. ‘급조된 스포츠 이벤트’를 동원해서라도 남북관계를 대화 국면으로 옮겨보려는 문재인 정부의 노력에는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반대 여론은 크게 두 갈래였습니다. 첫째는 ‘정부가 북한의 대화 공세에 휘둘리고 있다, 이런 꼴사나운 짓까지 해야 하는가’입니다. 연령대가 높은 남성들이 이런 주장을 내놓습니다. 저를 ‘아차’ 하게 한 것은 청년 세대의 반대였습니다. 이들은 단일팀 논의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 북한 선수들의 참여로 출전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는 일부 선수들의 피해를 우려했습니다. 왜 남자가 아닌 여자 대표팀에 피해를 강요하느냐는 물음도 있었습니다. 현재의 논의가 공정하지 않고 여성에게 희생을 강요한다는 거였습니다.
2월 평창에서 한반도기를 보고, 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2016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통일의식조사’를 보면, 통일이 필요하다는 20~30대의 의견은 36%대에 머물렀습니다. 한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이젠 당연하지 않습니다. 1991년 일본 지바의 코리아팀은 그해 12월 남북기본합의서란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평창의 코리아팀은 한반도에 무엇을 가져올까요. 뭘 가져온들 차갑게 식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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