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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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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마세요!

등록 2017-04-18 17:59 수정 2020-05-03 04:28

“오랜만입니다. (예전에) 아시아기자클럽에서 뵈었던 ○○라고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공격할까요? 누나가 미군기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너무 무섭습니다.”

첫 마감에 쫓기던 지난 금요일(4월7일), 2년 전 일본 도쿄의 한 강연에서 우연히 만난 한 일본 청년이 페이스북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습니다. 4월6~7일 미-중 정상회담을 마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잇따라 대북 강경 발언을 쏟아내자 일본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머잖아 북한을 폭격할지 모른다는 ‘괴담’이 돌았나봅니다. 생각해보니, 미국 대통령은 무엇이든 가능한 사나이 ‘도널드 트럼프’군요. 가 4월12일치 1면에서 보도했듯, 5월9일 치르는 한국 대선의 진정한 핵심은 ‘트럼프발 안보 대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내 정치로 눈을 돌리면, 손쉬운 ‘승리’가 예상됐던 대선은 이미 ‘안갯속’입니다. 한동안 부동의 1위를 지켜온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대세론은 이미 깨졌다고 판단하는 게 합리적입니다. 분노와 실망에 휩싸이기 전에 함께 생각해봅시다. 한국 대선의 ‘혼미’가 어디 어제오늘의 일이던가요.

한국의 진보, 아니 최소한의 상식과 염치를 알았던 집단이 승리한 지난 두 번의 선거 역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승리한 1997년 12월 대선이 대표적 예입니다. 전임 김영삼 정권의 경제 실정으로 인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 비리, 이인제 후보의 독자 출마, DJP 연합 등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우연과 필연적 요소가 겹쳤음에도 진보와 보수의 표차는 고작 39만 표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독자라면 모두 공감하시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노 대통령의 조금은 거칠고, 조금은 위태로워 보이는 열정을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그렇지만 노 대통령의 승리 역시 깔끔한 ‘한판승’은 아니었습니다. 노무현을 청와대로 이끈 결정적 요인은 정몽준 후보와의 극적인 단일화(와 선거 전날 밤 이뤄진 충격적인 파기)가 아니었을까요. 지난 두 번의 승리는 보수의 분열과 이를 적극 활용해 보수세력 일부를 적극 포섭한 두 지도자의 ‘전략적 결단’이 가져다준 결과였습니다.

한국의 진보와 보수가 ‘다이다이’로 붙었던 가장 최근의 선거는 2012년 12월 대선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51.6%의 득표율을 기록해 승리한 이 선거의 결과를 보면 여전히 ‘51 대 49’로 갈린 우리 사회의 이념 지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 촛불의 뜨거운 기억이 여전하지만, 한국 사회를 수십 년 동안 짓눌러온 보수 우위의 이념 지형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환경은 점점 엄혹해지고, 갈가리 찢긴 대한민국에서 촛불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오늘 출근길엔 책장에서 재일조선인 사학자 고 박종근 선생이 쓰신 이란 책을 빼들고 나왔습니다. 책 안에는 동학농민운동에서 시작돼 아관파천에 이르는 구한말의 처참한 역사가 담겨 있었습니다. 한반도 주변 정세는 당시처럼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데, 희망의 징후는 여전히 우리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있습니다.

일본 청년에겐 “걱정하지 말라”는 짧은 글을 회신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스스로에게 거는 자기최면이기도 합니다.

길윤형 편집장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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