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세를 믿지 않는다. 미국 쇼프로 (SNL)에 출연한 코미디언 루이(Louis C.K.)도 이렇게 말했다. “난 천국을 믿지 않아. 죽고 난 다음 하느님한테 물어봐. ‘천국은 어디 있나요?’ 그럼 하느님이 답할 거야. ‘와, 정말, 미치겠군. 그런 게 있다고 누가 떠들고 다니는 거야? 거대한 우주를 이미 만들었는데, 내세를 내가 또 만들어야겠니? 너희는 정말 욕심 많은 쓰레기야.’”
물론 종교는 부활의 기적을 행한다. 외롭고 괴로워 죽어가는 자를 위로하여 살려낸다. 굿, 고해성사, 통성기도, 독경 등은 아무 해를 끼치지 않고 스스로 평화를 얻는 방법이다. 그 점에서 나는 거의 모든 종교를 존중한다. (그럼에도 나는 비종교적 위안을 선호한다) 그 존중은 누군가의 식사 메뉴에 관여하지 않는 태도와 같다. 그가 사람을 잡아먹지 않는 이상(인류 보편의 이익에 반하니까), 그가 내 식사 메뉴에 참견하지 않는 이상(존중은 상호 교환적이니까), 무엇을 먹건 상관 않는다.
그 조건이 어그러지면 거부할 수밖에 없다. 종교의 이름으로 부정의를 나에게 강제하는 것은 식인을 즐기는 자가 나에게 사람 허벅지 찌개를 점심 메뉴로 강요하는 것과 같다.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정치권력자가 단일한 신념체계를 공권력을 동원해 전파한다면, 그는 민주공화정의 적인 것이다.
민중항쟁으로 대통령이 퇴진당하고 총리가 국가수반을 맡는 일이 한국 역사에서 두 번째로 일어났다. (2004년 탄핵 정국의 고건 국무총리는 민중항쟁으로 국가수반이 된 경우가 아니다) 두 총리에겐 비슷한 점이 있다. 종교적 믿음이 깊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내각제 개헌으로 총리에 취임한 장면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그는 한국인 최초의 재속프란치스코회 회원이었다. 가난한 이들과 어울려 가난하게 살면서 사제에 준하는 삶을 살기로 하느님에게 맹세했다. 그래도 총리 시절 가톨릭을 앞세워 정치를 한 흔적은 없다. 그저 민주주의자였다. 그가 우유부단했다는 세평은 쿠데타 세력의 악선전 때문에 형성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반란 군인들을 진압할 강단을 갖추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는 하느님만큼 시민을 경외했다.
“‘총검에 의한 외형적 질서’보다 ‘자유 바탕 위의 질서’가 진정한 민주적 질서라고 믿었기에 (중략) 철권으로 억압하는 대신 시간으로 다스리고자 했다. 귀와 입으로 배운 자유를 몸으로 배우게 하려는 의도였다. 이론과 학설로 배운 자유는 혼란을 일으키지만 경험으로 체득한 자유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단단한 초석이 되는 것이다.”(회고록 )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다. 전도사인 그의 종교적 신념을 나는 존중한다. 시민을 잡아먹지 않고, 나의 자유를 간섭하지 않는 이상, 그러하다. 그러나 하느님의 이름을 빌어 시민을 옥죄는 이는 종교인이건 무엇이건 민주주의 반대자에 불과하다. 민주주의 반대자는 정치를 하면 안 된다. 박근혜씨가 탄핵소추된 이유다.
재속프란치스코 회원들의 수칙 가운데 ‘봉사와 일하는 자세’라는 항목이 있다. 황 총리에게 참조가 되면 좋겠다. “절대 다른 사람 위에 있으려 해서는 안 되고, 모든 이들의 종이 되고 아랫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겸양하고 양순하고 겸허해야 하며 (중략) 어디에 있든지 어디를 가든지 논쟁을 벌이거나 다투거나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지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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