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지 편집장이 그럴듯한 감투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중간 간부에 불과하다. 한겨레신문사 본사의 임직원은 500여 명에 이른다. 편집국·출판국·광고국·판매국 등 여러 국실이 있는데, 은 출판국에 속해 있다. 사장·편집인·출판국장 등 주간지 편집장이 보고하고 지시받는 상급자가 줄줄이 많다.
중간 책임자의 어려움은 그 ‘중간성’에 있다. 후배들의 고충을 위로하고, 내 고충은 걸러내며, 상급자의 고충을 혜량해야 한다. 상급자를 설득해 자원을 끌어내는 한편, 자원 부족에 힘들어하는 후배들을 도닥이면서, 결국 내 자원을 털어 술과 밥을 사는 일도 그런 중간성에서 비롯한다.
물론 그런 중간성은 중간 간부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조직 구성원에 편재한다. 위에서 눌리고 아래서 치이며 어쩌지 못하겠는 위치에 놓여 있다고 저마다 한탄한다. 급기야 ‘인간관계’ 관리가 직업적 능력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상사에게 인정받고, 후배에게 인심 얻고, 동료와 원만히 지내는 만큼 조직 생활이 수월해지므로, 모든 업무의 기준을 그것에 맞추게 된다.
실제로 많은 언론의 상당수 기자들이 중간성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카를 마르크스의 개념을 빌리자면)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어, 자신이 치르는 일의 의미와 과정을 알지 못한 채, 노동의 결과물이 누구에게 어떤 쓰임이 있을지도 깨닫지 못한 채, 두어 시간의 취재와 두어 시간의 집필·제작으로 완결되는 ‘패스트푸드형 기사’의 컨베이어 벨트에 매달려 있다. 조직의 관성·관습으로 굴러가는 이 노동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생산라인에 함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다. 그 결과, 기자들은 조직 내 평판과 대인관계를 관리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노동의 결과물인 기사가 이 세상에 한 줌의 가치라도 전달할지 어떨지는 종종 뒷전에 밀려난다.
위아래로 인기를 얻기엔 애당초 글러먹은 인간이라 그런 것인지 몰라도, 나는 이런 일에 도통 흥미를 못 느끼겠다. 인성을 갈고닦으려면 산사에 들어가서 수도 생활을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한다. 기왕 진흙에 발을 담그고 여기저기 펜으로 쑤시고 다니는 일을 시작했다면, ‘거참, 못돼먹은 인간’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세상 좋아지는 일에 뭔가 기여해야 하지 않나 한다.
바글시민 와글입법 프로젝트, 기본소득 1천 일의 실험 등 최근 우리가 벌이는 몇몇 일의 연유가 거기에 있다. 기자들은 서로 비위 맞추는 것에 별 관심이 없다. 기자들끼리만 알아주는 단독 보도 경쟁에도 큰 흥미가 없다. 다만 우리의 기사가 정치-언론-시민을 이어붙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어떤 영향을 얼마나 미칠 것인지에 주목한다.
여러 프로젝트의 진행 중간에 소박하지만 중요한 결실을 얻었다. 시민주도형 입법 플랫폼 ‘국회톡톡’이 1호 추진 법안으로 ‘만 15살 이하 어린이 병원비 국가 보장’을 내걸었다. 이 의제가 사회적으로 더 많이 확산될 발판이 마련됐다. 지난 넉 달여에 걸친 의 기획연재 <font color="#C21A1A">‘아이가 아프면 모두가 아프다’</font>에 영향받은 바가 크다고 국회톡톡의 이진순 대표가 나에게 귀띔했다. 때맞춰 신소윤 기자는 그 제안의 절박함과 현실성을 다시 한번 보여주려고 무균병동을 밀착 취재했다.
인성 관리는 못해도 세상 관리는 좀 하고 싶었으니, 이것이 언론의 역할이 아닐까 한다. 중간 간부의 고독한 중간성이 모처럼 위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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