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영화 의 ‘매우 중요한 사람(VIP)’ 시사회에 초대받았다. 대중적 스타라고 할 만한 면면만 꼽아도, 소설가 공지영, 작가 유시민, 교수 조국, 영화감독 변영주, 평론가 허지웅 등이 왔고, 점잖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석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 김두식 경북대 교수, 권석천 논설위원 등도 조우했다. 인파 속에 미처 인사하지 못한 명사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빛나는 이들과 함께 공짜로 영화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출세한 것 같아 즐겁고 좋았다, 고 적으려니 가슴이 쓰리다. 그렇다. 밴댕이의 속을 그대로 품고 있는 나는 하나도 좋지 않았다. ‘매우 중요한 소비자’보다는 ‘덜 중요하더라도 어쨌든 생산자’가 되는 게 인생의 목표인 것인데, 그걸 먼저 이뤄버린 의 최승호 PD가 질투 나서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기사-출판-영화로 이어지는 진정한 ‘원소스 멀티유스 뉴스’의 전범을 그가 먼저 성취해버렸으니, 해직된 처지에 뭐 그리 열성으로 취재해서 후배 언론인들을 이렇게 기죽이는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가 다 이뤘으니 이제 무엇을 목표로 기자 노릇을 계속할지, 갑갑하기도 했다.
MBC에서 해직된 최 PD와 그가 몸담고 있는 동료들의 땀이 고스란히 담긴 다큐멘터리영화 은 ‘유우성 간첩 사건’을 뼈대로 박정희 정권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는 국가정보원의 간첩 조작 공작의 실체를 다루고 있다. 특히 기자 또는 기자지망생들이 보면 가슴 뛸 것이다. 비루하고 비겁한 기자의 일상 가운데서도 희귀한 분투를 통해 기적처럼 빛나는 성취를 이룰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나의 시답잖은 강의를 듣다가 이제는 기자가 되어버린 이들과 함께 시사회에 갔는데, 나중에 그들이 물었다. “왜 이런 취재를 다른 기자들은 안 했을까요.” 나를 향한 힐난인 듯해 뜨끔했으나, 짐짓 냉정하게 답했다. “기자 일의 핵심이 ‘검증’이라는 것을 몰라서 그랬겠지.”
언론 본연의 임무가 권력 감시라는 게 사실이라면, 권력자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기자는 믿어선 안 된다. 의심하여 검증하는 것이 모든 취재의 기본이자, 세상을 뒤흔드는 탐사취재의 출발이다. 검증의 과정은 특별하지 않다. 오히려 지나치게 단순하여 고되다. 누군가를 만나서 들어보면 된다. 그 간단하고 명료한 일에는 기다리고 설득하고 퇴짜 맞고 모욕당하는 시간이 포함돼 있다. 다만 그것만 견디면 반드시 ‘진실’이 얼굴을 내민다.
이번 가을, 새롭게 에 합류한 진명선, 송채경화, 성연철 기자가 검증을 실천했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둘러싸고 검찰·경찰·서울대병원이 내놓은 주장을 검증하여 단독 보도한다. 그들은 기다리고 설득하여 만나고 듣고 읽었다. 그 죽음에 대해 국가의 사과를 촉구하는 보수 정치인 유승민과 만난 서보미 기자도 오래전에 인터뷰를 제안하고 기다리고 마침내 설득했다.
그들의 기사를 손질하며 마감을 치르다 문득 알아차렸다. 나는 ‘매우 중요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매일 매주 매달 기자 노릇을 치르고 있다. 그들이 있어 당분간 이 길을 더 가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보다 더 훌륭한 탐사보도 다큐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을 것이다. 기자라면, 검증하라.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이 대통령, 감사원장 후보자에 김호철 전 민변 회장 지명
![[단독] ‘김건희 후원’ 희림건축, 종묘 앞 재개발 520억 수의계약 팀에 포함 [단독] ‘김건희 후원’ 희림건축, 종묘 앞 재개발 520억 수의계약 팀에 포함](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07/17650888462901_20251207501368.jpg)
[단독] ‘김건희 후원’ 희림건축, 종묘 앞 재개발 520억 수의계약 팀에 포함

‘심근경색’ 김수용 “저승 갔다 와…담배, ○○○ 이젠 안녕”

‘갑질’ 의혹 박나래 입건…전 매니저 “상해, 대리처방 심부름”

‘소년범 의혹’ 조진웅 은퇴 선언…“지난 과오에 마땅한 책임”

‘강제추행 피소’ 손범규 국힘 대변인 사임…장동혁 두 달 지나서야 “신속 조사”

쿠팡 손배소 하루새 14명→3천명…“1인당 30만원” 간다

‘윤어게인’ 숨기고 총학생회장 당선…아직도 ‘반탄’이냐 물었더니

트럼프가 이겼다…대미 3500억불 투자 손해, 자동차관세 절감 효과 2배

‘이준석 측근’ 탈당…“이준석, 장경태 두둔하더니 이제 와서 비난”
















![[단독] 세운4구역 고층 빌딩 설계, 희림 등과 520억원 수의계약 [단독] 세운4구역 고층 빌딩 설계, 희림 등과 520억원 수의계약](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resize/test/child/2025/1205/53_17648924633017_17648924515568_2025120450403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