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킹’이라 불리는, 편집책임자의 마지막 검토 과정을 매주 치른다. 기자를 신뢰하므로 그 원본을 그대로 살리려 애쓰지만, 술술 읽히도록 썼는지, 복잡한 내용을 친절하게 설명했는지 등을 더 살피며 재작성을 지시하기도 한다.
몇 년 전, 어느 초년 기자의 르포 기사를 6차례 다시 쓰게 한 적이 있다. “처음부터 다시 써.”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 써.” “생생하게 재현하는 기분으로 다시 써.” 그렇게 고쳐쓰던 정환봉 기자의 최근 기사를 보면 크게 손댈 곳이 없어 흐뭇한데, 정작 그의 소회가 어떤지, 진절머리 났는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데스킹 과정에서 매번 나의 눈을 묶어 세우는 낱말이 있다. 결벽증 환자가 머리카락 한 올의 불결함에 몸서리 치는 양, 글 곳곳에 박힌 ‘우리’라는 낱말을 계속 노려보게 된다.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영미 언론의 기사 가운데 our nation 또는 our country라는 단어를 본 적이 없다. 그런 말은 정치인들이나 쓴다. 즉, 정치적 구호다. 기자라면, 우리 정부, 우리 국가, 우리 나라라는 말을 피하는 게 좋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컨대 우리 정부가 아니라 ‘한국 정부’, 우리 나라보다 ‘한국’이 적절하지 않을까.
비슷한 생각을 일찍이 발표한 논문을 얼마 전 조우하여 반가웠다. 정연구 한림대 교수는 다른 나라 언론에 없는, 근대 이후 한국 언론에서만 발견되는 우리 회사, 우리 사회, 우리 나라 등의 표현에 유교적 규범주의와 민족주의, 그리고 체제와 국가를 앞세우는 이데올로기가 융합돼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의 위대한 현대사를 부정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 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고 할 때, 현대사의 어두운 대목을 더 들여다봐야 한다고 여기는 나는 우리에서 배제됐다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물론 같은 낱말이라도 다르게 쓰일 수는 있다. 이번호에서 한지완 작가는 이렇게 썼다. “생명과 인권이 더 가치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데, 우리 사회는 현재 누구도 그것을 믿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이 훌륭한 글에 등장하는 ‘우리’는 배척이나 억압이 아니라, 성찰적 공동체를 촉구하는 단어다. 그러니 이런 맥락의 우리(나라)와 폐쇄적 정체성을 끌어들이는 우리(나라)를 구분해 데스킹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고심이고 병적인 집착이다.
우리는 고체와 액체 사이의 무엇이다. 나의 정체성을 가두려는 완강하고 딱딱한 ‘고체의 우리’에 나는 끼고 싶지 않다. 그러나 섞이고 스미다 때로는 갈라져 흐르는 ‘액체의 우리’라면 잠시 껴볼 만하다. 정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로부터 나를 구속하는 억압적 동의”가 아니라 “나로부터 우리로 해방되어가는 이해와 합의”가 진정한 우리이다.
서로 다른 두 청문회를 이번호에 담았다. 기업의 탐욕에 눈감고, 이를 방조한 정부를 허용하고, 끝내 그 규명까지 외면하는 우리, 우리 사회, 우리 언론, 우리 나라의 민낯이 등장한다. 그런 억압적 우리들이 기사 문장에 껴들었을까봐 결벽증 환자처럼 이번호 데스킹을 치렀다. 헷갈릴 때마다 이렇게 물어보았다. ‘우리라고? 니들이 도대체 누군데?’
‘한국 신문사설의 대안적 글쓰기 연구: 필자와 독자의 거리를 중심으로’, 32호, 정연구, 1994</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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