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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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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

등록 2016-04-05 15:00 수정 2020-05-03 04:28

1970년대 미국 언론은 ‘정밀 저널리즘’(Precision Journalism)을 도모했다. 사회과학의 양적 방법론을 차용했다. 기자의 주관적·우연적 선택에 떠맡겨지는 몇 명의 인터뷰가 아니라, 샘플 조사·검증에 기초해 각종 이슈와 여론을 보도했다. 여론조사 보도의 시초다.

정밀 저널리즘은 이후 진화를 거듭해 빅데이터 분석, 연결망 분석, 지리정보 분석 등 데이터 저널리즘으로 이어졌다. 그 핵심은 (과학자들도 인정할 만한 수준으로) 진실을 추적하고 검증해 보도하자는 ‘기자 정신’에 있다.

그러나 한국의 여론조사 보도, 특히 선거철 후보 간 지지도 조사는 정밀 저널리즘의 비참한 껍데기다. 1천 명의 의견을 들어 5천만 명의 생각을 검증한다는 그 방법은 사회과학적 샘플링에 기초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불투명하고 일관적이지 않으며 때로 부정확한 샘플링으로 인해) 진실 보도와 별 상관이 없고, 그 효과는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언론의 본디 자리의 반대편에 서 있다.

지지도 여론조사 보도는 전형적인 ‘경마 보도’다. 누가 앞서고 뒤서는지만 보여준다. 유권자를 정치의 구경꾼으로 몰아넣는다. 그 결과, 저 유명한 ‘침묵의 나선 이론’이 경고한 일이 벌어진다. 자신의 지지 후보·정당이 소수·열세임을 알려주는 여론조사를 보고 나면, 제 의견을 남에게 내놓기 꺼리게 된다. 패배할 것이 뻔하므로 투표 행위도 포기한다. 그 결과, 그들의 의견은 정치에 반영되지 못한다. 대세·주류·기득권의 정치가 공고화되는 악순환 고리의 첫 단계가 지지도 여론조사 보도다.

여론조사 보도가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거의 유일한 길은 후보·정당이 아니라 이슈·정책에 대한 여론을 보도하는 것이다. 그제야 여론조사 보도는 공중의 의견을 정치권에 ‘밀어올리는’ 순기능을 발휘한다.

이번 총선에선 어느 때보다 ‘침묵의 나선’이 회오리칠 가능성이 높다. 정치적 냉소·혐오를 품고 있는 절대다수의 유권자를 투표장에 끌어들일 정책 이슈가 사라졌고, 정당 간 차이도 희미해졌으며, 새 시대를 표상하는 정치인도 분명치 않다.

선거 보도 역시 최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한 달 동안 공천 파동의 정쟁을 중계 보도했고, 앞으로 2주 동안 지지도 여론조사가 주를 이룰 것이다. 정책 의제를 발굴하거나, 선거제도를 비판하거나, 이슈 여론을 보도하는 일은 극히 드물 것이다.

이럴 바에는 선거 몇 달 전부터 지지도 조사의 언론 공표를 금지하는 게 좋지 않을까. 지지도 및 판세 분석으로 선거 보도를 대체했던 기자들이 대안을 찾기 시작할 테고, 그제야 ‘아래에서 위를 향하는’ 진짜 정치 보도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두 차례에 걸쳐 특별판을 발행한다. 선거 보도의 관행을 완전히 뒤바꾸진 못하겠지만, 나름 공들인 기사를 내놓는다. 정밀 저널리즘의 정신을 따르면서도, 지지도 여론조사가 아닌 유권자 표심 분석을 통해 한국 정치의 지형을 드러내려 했다. 분석 결과, 민심에 부응하지 못하는, 부응할 태세를 갖추진 못한 여당과 야당의 지리멸렬이 드러났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 되려면 ‘정치적 존재’인 우리가 선거를 통해 무엇인가 발언해야 한다. 그 길이 막혀 있다면 선거는 꽃이 아니라 말라 비틀어진 낙엽일 뿐이다. 정당 구조가 그 길을 막았다면, 언론이라도 나서서 길을 터야 한다. 이 찬란한 봄길에 썩은 낙엽만 뒹굴다니, 참 서글프지 않은가 말이다.

안수찬 편집장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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