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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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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 기부

등록 2015-09-15 16:38 수정 2020-05-03 04:28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언론사 입사준비생들에게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다. 수업 시간에 좋은 칼럼을 함께 읽는다. 학생들에게 목소리 내어 읽도록 하는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적혀 있는 그대로 읽지 못한다. 단어나 조사를 빼먹거나 전혀 다른 낱말로 바꿔 읽는다. 더듬거리느라 읽는 속도도 느리다. 드물게 잘 읽는다 싶으면 아나운서 지망생이다.

글쓰기도 심상치 않다. 자기표현에 서툴다. 자신의 경험·감정·생각을 적는 일을 낯설어한다. “술 먹은 거 게워내듯 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토해내 써보라”고 조언해도 큰 진전이 없다. 언론사 입사에 어울리는 어떤 ‘정답’을 찾고 있는 듯하다. 제 생각을 적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써야 합격한다더라’는 누군가의 말에 기대어 문장을 만들어낸다.

10차례 강의에 걸쳐 30여 명이 200여 편의 글을 제출하는데, 무릎 치고 고개 끄덕이며 읽게 되는 글은 거의 없다. 좋은 글 읽는 재미가 없어 솔직히 강의가 힘들 때도 있다. 물론 강사의 실력이 부족한 탓이겠다. 사정이 그리된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능력은 없지만, 하나의 가설을 갖고 있다. 입력되는 정보의 대부분을 조각난 상태로, 특히 ‘이미지’로 수용하는 것이 원인일 수 있다.

아침저녁 지하철에서 그 현장을 목격한다. 젊은 사람 열 가운데 여덟은 스마트폰을 본다. 나머지 둘은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들여다보는 사람 여덟 가운데 여섯은 게임을 하거나 드라마·예능 프로그램을 본다. 나머지 둘은 페이스북이나 포털을 본다.

이런 세상에서 주간지 기자를 하고 있으니 잘 살고 있는 게 맞나 싶다. 시간은 너무 빨리 흘렀고 나는 미처 따라잡지 못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덕분에 내 능력의 희소가치가 높아지고 있긴 하다. 읽고 쓰는 것을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

조각난 정보를 아무리 습득해봐야 지식이 되지 못한다. 지식은 여러 정보의 연관 속에 구축된다. 정보의 연관을 파악하는 것은 긴 글을 읽어내야 가능한 일이다. 또한 지식은 표현과 만나 비로소 완성된다. 표현하면 생각이 정리된다. 읽기와 쓰기는 사고를 자극하고, 활성화된 사고는 더 많은 지식을 추구하게 만든다. 읽기와 쓰기를 통해 지식이 완성된다.

에는 자신을 표현하는 글쓰기의 모범으로 삼을 만한 글이 차고 넘친다. 파편화된 정보를 맥락 속에 정돈하여, 뉴스를 교양과 지식으로 승화시키는 좋은 글이 많다. 희소해서 값이 높아지는 능력이 있는 반면, 희소해지다가 소멸하는 능력도 있다. 이런 매체를 만드는 우리의 ‘희소한’ 능력의 값어치가 높아질지 소멸할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아직 그 가치를 믿는 사람들에게 매체를 기부하려 한다.

중·고등학교 수업용, 대학교 학생회·동아리 토론용 등 개인이 아닌 집단에게 을 1년간 보내드리겠다. 그 비용은 뜻있는 몇몇 기업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후원하기로 했다. 학생들과 나눠 읽고 싶은 각급 학교 선생님, 친구들과 나눠 읽고 싶은 동아리 회장 또는 학생회장 등이 구독을 신청하면, 소정의 상담을 거쳐 무료로 보낼 것이다. 1020세대의 ‘읽기와 쓰기, 그리고 생각하기’에 우리 매체가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이 캠페인에 도움을 줄 개인·단체·기업의 후원도 기다리겠다. 저마다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읽고 쓰며 생각하는 세상이 오기를 꿈꾼다. 문의는 02-710-0542, doorkey123@hani.co.kr.

* 추신. 김완(사진) 전 편집장이 디지털팀장으로 일하게 됐다. 진작부터 그는 우리 매체에 좋은 글을 써왔고, 열광적인 여러 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언론·정치·문화에 두루 해박한 그가 디지털 미디어의 미래를 밝힐 것이다. 독자와 함께 우리도 그를 성원할 것이다. 안수찬 편집장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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